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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긍정 Nov 17. 2016

'좋은 시험'은 존재할 수 있을까?

'시험'에 관한 고찰

우리가 선택한 책이나 영화가 
지루한 건 너의 잘못이 아냐 
그냥 재미없는 창작의 결과일 뿐야
우리가 선택한 음악이 이토록
우울한 건 너의 잘못이 아냐  
그냥 재미없는 창작의 결과일 뿐야

하지만 어쩐지 끝을 확인해야만 했지 
마치 예전에 내가 했던 사랑처럼 
하지만 어쩐지 음을 반복해야만 했지 
마치 예전에 내가 했던 후회처럼

내가 했던 마지막 사랑도
재미없는 창작의 결과일 뿐야 
아름다운 끝이란 건 결국 아름답지가 않나 봐 
나로 인해 끝난 모든 것들은 
그래도 너로 인해 조금은 말야 
아름다웠던 것 같아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 '재미없는 창작의 결과' 中, '안녕하신가영'


방금 소개해드린 내용은 제가 평소 좋아하는 '안녕하신가영'이라는 가수의 '재미없는 창작의 결과'라는 노래입니다. '시험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에서 갑자기 뭔 뜬금없는 노래 소개냐라고 반응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네요. 이미 눈치챈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가 치르고 있는 '시험' 역시 어쩌면 '재미없는 창작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개인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시험을 통해, 그리고 점수라는 하나의 수치를 잣대로 '감히' 줄 세우기를 감행하여 많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있는 이 '시험'이라는 것. 이 시험으로 좌절하기도, 때로 절망하기도 하는 우리는 어쩌면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니라 시험 자체가 애초에 재미없는 창작의 결과이자 본질적으로 '나쁜' 시험이기에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각종 시험은 하나같이 이 나쁜 시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 내 시험을 비롯하여 수능, 공무원 임용시험, 사법고시, 행정고시, 입법고시, 입사시험 등 오랜 기간 시험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죠. 

시험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험은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개인의 학습과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 저>라는 책 등에서도 시험은 과학적으로 학습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시험이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이 시험을 보는 주기, 강도, 형태, 메타인지적 요소 등에 따라 시험의 효과가 달라지지만 말이죠.)


시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이 시험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즉, '평가'와 '시험'을 우리 사회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시험이 과연 개개인의 성장을 위한 '성장적 교육관', '발달적 교육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줄을 세우고, 어떻게든 분리와 구분을 시켜 필연적으로 실패자를 만들며, 몇몇 개인들에만 초점을 맞춘 '선별적 교육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인지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학부모마저 학교 시험이 쉬워졌다는 이유로(변별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성적표에 등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종 경시대회에 눈을 돌려 아이의 등수를 확인한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모두가 잘해서 점수가 잘 나온 것인지도 모름에도 말이죠.  

물론, 시험이라는 것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좀 더 좋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측면에서 부득이하게 필요한 절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나요? '시험 만능주의' 국가도 아니고 '평가의 사회학과 철학'에 대한 고민도 없이 모든 것을 시험으로만 해결하려는 평가자들도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번 양보한다 해도 지금의 시험이 과연 한 사람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출처 : EBS 다큐프라임 시험 2부 - 시험은 기술이다>
<출처 : EBS 다큐프라임 시험 2부 - 시험은 기술이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는 나중이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단계에서 도움이 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재능은 무용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오늘날의 관례입니다. 인간적인 능력을 가격표가 붙은 상품처럼 사고팔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상거래식 발상'입니다." (출처 :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타츠루 저>)

애초에 사람의 역량은 단순한 시험만으로 결코 온전히 평가할 수 없습니다. 물론 평가자의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우리 대학,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잘 선발해야 하기에 각종 평가 수단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 평가 수단이라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편협하고 왜곡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수능'만 예로 들어도, 수능은 본래 학생이 가지고 있는 '인지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즉, 학생 전체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일부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일종의 보조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보조 수단이 아닌 '주요 핵심 수단'으로 격상시켜 이를 이용해 학생들을 줄세우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과정 속에서 애초에 학생의 인지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수능의 본래 취지 마저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수능을 가지고 줄을 세워야 하니, '변별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험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결국 어떻게든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시험 범위는 증가하고, 풀이 시간은 짧아지고, 난이도는 어려워지는 등 학생의 인지 역량 수준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적절히 평가하려고 한 본래 취지마저 상대평가라는 틀 안에서 완전히 왜곡된 것입니다. 지금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쌤, 근데 이거 시험에 나와요?


바로 이 한 문장이 시험으로 왜곡된 우리 교육의 총체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성장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시험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시험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등수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애초에 학생이 평소에 얼마나 공부하는 내용을 잘 이해했고 공부해왔는지를 '점검하는 수단'임에도 말이죠.


<출처 : EBS 다큐프라임 시험 2부 - 시험은 기술이다>


"제 아들에게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지 엄마가 구해다 주면 어떨까?'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런 시험이 아니지, 테스트는 내가 공부한 것을 얼만큼 얼고 모르는지를 보는 건데 그렇게 하는 것은 반칙이지' 얘기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수능 EBS 70% 기출 똑같이 출제'라고 방송에 나오더라고요. 이거 과연 교육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시험 문제와 똑같은 걸 공부하는 게 교육인가. 그리고 이를 믿고 대학을 합격시키는 이 시대가 과연 제대로 된 건지 저는 그 두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출처 : <일등주의 교육을 넘어, 조희연 저>)

지금도 많은 학생이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하고 있지 않나요. 아니,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런데 애초에 시험을 위한 공부를 별도로 하는 것은 '반칙'이 아닐까요. 시험은 학생의 평소 역량을 점검하기 위한 것인데,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가 개입되면 이는 결국 '정직하지 못한 점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에 대한 재밌는 실험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시험공부 안하기 프로젝트'입니다. 



얼마 전 진행되었던 행사로, 저도 다녀왔습니다. :)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을 본다? 상상이 가시나요? 학생 주도 교육 개혁 프로젝트 '프로젝트 위기'라는 단체의 대표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직접 용기있게 실험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담아 시사회 및 토론회를 개최한 행사였습니다. 여기서 '시험공부'란 오직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로, 평소에 하는 공부와는 구분하였습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벼락치기와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직전까지 열심히 외웠지만 정작 시험이 끝난 후 이를 까먹는다면 이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개인의 입장에서도 남는 것이 없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정직하지 못한' 점수들이 늘어나는 오늘날의 시험공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위트있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를 통해 시험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현실을 직시하고 좋은 분들과 이에 대해 토론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네요. 
추후 온라인 상으로도 공개가 된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찾아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 '좋은 시험'이란 무엇일까?


결국, 지금의 시험이 '나쁜' 시험으로 변질되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시험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선별적 교육관'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험을 개개인의 성장을 위한 점검 수단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오로지 줄을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모두가 잘해도 필연적으로 패배자와 실패자를 만드는 시험,
'선별적 기능'이 포함된 시험에는 결코 '좋은'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형태의 시험이 나온다고 해도 시험을 이용하는 국가의, 우리의 자세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시험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시험'이란 건 처음부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좋은 시험'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미국의 어느 학교에 아메리카원주민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시험 시간, 백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자기 답안지를 보지 못하도록 책상 가운데에 책가방을 올리고 시험을 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아메리카원주민 아이들은 책상을 돌려 둥그렇게 모여 앉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은 '지금 시험을 볼 건데 뭘 하고 있는 거야?'라며 야단을 쳤다. 그러자 아메리카원주민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선생님, 저희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함께 도와 가며 해결하라고 배웠어요.'라고 대답했단다." (출처 :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이형빈 저>)

그렇습니다. 시험은 '경쟁의 과정'이 아니라 '협력의 과정'인 것입니다. 이런 시험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시험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나가기 위한 것'이란 사실이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겠죠. 이 취지를 잘 실천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핀란드'입니다. 


시험 중입니다^^ <출처 : MBC 스페셜, 열다섯 살, 꿈의 교실 2부 - 꼴지라도 괜찮아 >
시험 중입니다^^ <출처 : MBC 스페셜, 열다섯 살, 꿈의 교실 2부 - 꼴지라도 괜찮아 >
시험 중입니다^^ <출처 : MBC 스페셜, 열다섯 살, 꿈의 교실 2부 - 꼴지라도 괜찮아 >


시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하나의 방식'이니까요. 
- 살라 씨우꼬넨, 핀란드어 교사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우리는 '감히' 시험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 걸까요. 시험은 학생들이 자기 수준을 진단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시험 도중 잘못된 답을 적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선생님이 도와주기도 하고, 시험 중에도 언제든지 여러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학생 역시 한 명도 없습니다. 


평가란 그 자체로 '종결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교육 과정과 수업에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피드백' 역할을 한다. 
- <교육과정-수업-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이형빈 저


이렇듯 시험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줄세우고 분리하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그래서 시험 이후의 '피드백'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시험 점수' 이외에 제대로 피드백을 받아본 경험이 기억나시는지요. 

핀란드의 사례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좋은 시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셨나요?
저는 '좋은 시험'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봤습니다.


1. 다양한 역량을 존중한다.
2. '선별적 교육관'이 아닌 '성장적 교육관'이 담겨있다. (시험을 서열화의 수단, 도구로 활용하지 않는다.) 
3.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다. (서열화하는 절차가 아니라 절대적인 역량을 평가한다.)
4. 정답을 '고르는' 시험이 아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5. 시험 '전' 과정(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로도 도움이 된다. 
6. 시험 '후' 과정(피드백)이 시험을 본 당사자에게 도움이 된다.
7. 별도의 시험 공부에 대한 부담이 적다. (시험을 위한 '기술'이 통하지 않는 시험)


이러한 조건에 맞는 시험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 덴마크의 '학습계획서', 네덜란드 대입제도(가중치를 둔 추첨제), 핀란드를 비롯한 소위 교육 선진국들의 평소 시험 정도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정리한 조건과 대다수가 일치하는)

특히, 네덜란드의 대입제도가 함의하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모든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울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개인의 역량을 모두 담을 수 없는 시험이라는 그릇에 의존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 역량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을 최소화함으로써 오히려 '측정 불가능한 다양한 역량들을 존중하는' 평가제도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EBS 다큐프라임,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5부 - 교육>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칼로레아 역시 더욱 의미가 남다른 것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도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시험 이후의 삶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시험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줍니다. (하단 영상 참조 :))


'좋은 시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영상입니다. <출처 : 지식채널e - 시험의 목적>


한편, 평가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평가자도 곤란할 겁니다. 선발할 수 있는 자리는 분명 한정되어 있고, 결국 부득이하게 정말 우리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잘 선발해야 하는데 짧은 시간과 몇 개의 자료만을 가지고 사람을 선발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국가든, 기업이든 그 조직 나름대로 선발을 위한 여러 평가 수단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겁니다.

그런데 평가를 '효율적'으로 하려다보니 자꾸 문제가 발생합니다. '효율 = 결과/투입 비용' 인데, 사실 사람을 선발한 이후의 결과를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결과보다는 투입 비용을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집니다.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조직에 맞는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그 사람을 많이 접해보고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투입 비용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 많은 사람들을 오랜 시간 지켜보며 평가하기보다는 대규모 인원을 한 번에 쉽게 측정할 수 있고, 평가의 편의성이 높으며, 공정성 시비가 잘 일어나지 않는 형태의 시험을 운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효율에서 차지하고 있는 '결과'라는 수치는 더 떨어져 결과적으로 효율성은 증가하기는 커녕 오히려 감소하는 일종의 '효율성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것 저것 시도해봐도 결과는 어차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으니, 차라리 투입 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린 그래도 최소 비용으로 평가했으니 나름 효율적이야!"라는 합리화와 함께 말이죠이러한 메커니즘이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시험, 평가제도에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험은 '정말 부득이한' 경우(즉, 한정된 자리로 인해 누군가를 선발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선별적 교육관이 담긴 시험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학생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외의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좋은 시험'의 형태를 통해 시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요. 또한 '필요악'으로 기업 등에서 부득이하게 시험 등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경우에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관찰하여 개인의 역량을 마땅히 존중해줘야 할 것
입니다.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결과가 될 것 입니다.


하버드대학에 합격한 학생은, 하필이면 19세의 나이에,
하필이면 하버드대 입시가 요구하는 특정한 능력을 가진 학생에 불과하다.
-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


지금도 끝날 듯 끝날 것 같지 않은 끊임없는 시험으로 자신의 현재를 희생히며 고통받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설사 시험을 못봤다 하더라도, 그 평가에 통과하지 못했더라도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시험'이 잘못되어 있으니까요. 그 시험이 '좋은 시험'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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