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
우리 교육의 현 실태를 위와 같은 우스갯소리로 표현할 정도로 우리 교육은 너무나도 뒤처져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요?
올해 들어 정부의 주도하에 대학의 구조조정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PRIME), 대학 인문 역량 강화(코어) 재정지원사업 등 막대한 지원금을 미끼로 대학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도 아무런 대책도 변화도 지지부진한 대학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정부 역시 여전히 Top-down 방식의 일방통행을 통해 앞뒤도 맞지 않는 여러 정책들을 마구잡이로 수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참고)
대체 대학은 몇 세기 대학이며, 교육부는 몇 세기 교육부일까요?
여기 19세기 작가 필립 길버트 해머튼이 저술한 <지적 생활>이란 책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를 편역 하여 <지적 생활의 즐거움>이란 이름의 책으로 출판하였는데요. 19세기에 쓰인 이 글이 마치 오늘날 21세기 한국 교육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아 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분보다 더 많은 지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분이 맛보았던 지적의 생활의 기쁨은 경험하지 못 합니다. 우리는 지식과의 대면에서 옛날 사람들이 겪었던 흥분을 느끼지 못 합니다. 우리의 지적 수준은 과거보다 확장되었을지 몰라도 지적 감수성은 과거에 비해 분명 퇴화해버렸습니다."
"현대사회는 우리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 과목을 던져주고 나중에 가장 적합한 분야를 골라 스스로 가야 될 길을 찾아 떠나라는 얘기입니다. 즉 인간이 자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용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제 자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간인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으로 이것저것 가르치고 보자는 방임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하나씩 먹어보라는 강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많이 배워서입니다. 얕은 깊이로 너무 많은 학문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능으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 길로 망설임 없이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토록 많은 분야의 지식이 전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이 같은 특권이 과거의 악습처럼, 무지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 순간에도 세계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가벼운 지식들에 뒤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과거의 가장 화려한 지적 지도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지성인으로서의 모습은 그들이 배우는 데 바친 노력과 열정에 비해 너무나 하찮고 보잘것없습니다."
"우리는 여섯 가지를 공부하고, 그중 단 한 분야에도 정통하지 못하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은 배움을 실천에 옮겨 자기만의 사상을 갖추려고 노력했다면, 우리는 배우는 과정에 집착하여 '배웠다'라는 과거형을 자랑삼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더 많은 공로를 베푼 학문적 성과는 천대받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다지 유용할 것 없는 학문적 성과는 정부 주도하에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후한 보상이 주어지고 있는 중요하지 않은 분야들이 학문의 세계에서 주류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능을 갖춘 젊은이들이 세간의 환호를 좇아 자신의 재능을 반감시키는 그런 분야를 전공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어떤 학문을 장려하는 것은 학문 그 자체를 병들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국가 발전에 지금 당장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즉 돈이 된다는 이유로 어떤 학문은 인정하고 그 외의 학문은 등한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국민은 정부가 지지하는 학문이 진짜이며, 그렇지 못한 학문은 우리 삶에 필요 없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 분야가 돈이 되는지, 이를 전공했을 때 교수가 될 확률이 높은지, 나중에 훈장이나 메달 수상자가 될 수 있는지를 따지게 된다면 이미 순수한 지성의 발현은 물 건너갔습니다."
"나의 타고난 재능과 관심을 억누른 채 정부가 권장하는 안전한 길을 택하게 됩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젊은 학생들은 정부와 학교가 지원하는 학과를 선택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공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게 좋아서,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서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공부일까요? 이런 식으로 정부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까요? 정부가 개입할수록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필요하지 않은 학문을 학위 때문에, 돈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형국입니다."
"학문과 예술의 본질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지의 표출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곤충학에서 훌륭한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나라의 가장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은 장학금과 보장된 일자리를 찾아 곤충학을 전공하게 될 것입니다. (... 중략 ...) 그렇다면 이 많은 젊은이들이 모두 곤충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될까요? 아닐 겁니다. 그중 소수만이, 정부가 굳이 나서서 장려하지 않아도 곤충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만이 곤충학을 꾸준히 연구하여 성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나머지 절대다수는 곤충학 박사 학위라는 자기 생에 필요도 없는 명예를 달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강압적으로 곤충학자를 대량 생산하지 않아도 소수의 재능 있는 곤충학자들로 충분히 성과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교육부가 필수 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곤충에 대한 지식은 소수의 열정만으로 충분합니다."
"단지 정부와 대학이 '이런 종류의 연구에 집중해주십시오. 우리말을 따르는 분들에겐 더 빨리 학위를 수여하고, 수익이 보장된 직장을 분배해드리겠습니다.'라는 꿀송이 같은 말로 젊은이들을 유혹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입니다. 당신들 선택을 강요해서 학문의 지적 연구에 차별을 두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왜냐하면 국가와 대학에는 개인의 지적인 삶을 차등 짓고 순위를 매기고 강압적으로 인도할 자격도, 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예산에 기대어 학생들을 강제로 편입시키고, 학문의 자유를 박탈하고, 함부로 그들의 미래를 결정지어버리는 오만한 권위를 내려놓기 바랍니다."
"학문은 지금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그 연구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언젠가는 지식의 길에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학문의 상대적인 위상은 대학의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다가올 역사를 통해 검증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판단에 맡겨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학의 역할은 정부와 손잡고 학문에 순위를 매겨 등수를 차별하는 데 있지 않고 젊은 학생들이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며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음을 명심해주십시오."
이 모든 글들이 19세기에 쓰였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여기의 이 내용들이 지금의 시대에 모두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에 대해 응답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몸에 좋은 음식을 한 상에 모두 차려놓고, 하나씩 다 먹으라고 강요하는 일종의 '폭력'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그 좋은 음식을 스스로의 힘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과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좋은 음식도 억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법이니까요.
무조건 좋은 음식만 먹이려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세상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음식들이 있는데, 이를 발견하는 과정 없이 이미 주어진 좋은 음식만 먹이려 한다면 다양하고 풍성한, 균형 잡힌 밥상이 가능할까요? 우리 몸에 면역력이 생길 수 있을까요?
정부나 대학 역시 당장 돈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학문에 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학문에 순위를 매겨 등수를 차별화하는 세태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고민하며 자신이 선택한 그 분야에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학문의 상대적 위상은 정부와 대학의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판단할 일이니까요. 정부의 예산에 기대어 학생들을 강제로 편입시키고, 학문의 자유를 박탈하고, 함부로 그들의 미래를 결정지어버리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권위니까요.
부디 19세기의 이 간절한 메시지에 21세기 교육이 꼭 응답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