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비 내리는 교토는 낭만적이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공기에 희미하게 퍼지는 교토 타워의 불빛을 보고 있으니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 몰려왔다.
가족여행이 아닌 친구들과의 여행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올해로 19년 지기가 된 우리는 채 젖살이 빠지지 않은 풋풋했던 시절, 대학에서 만나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여름이면 바닷가로 여행을 다니고, 생일이면 다 함께 모여 초를 불고. 별일이 없어도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도 다녔다.
졸업 후에도 많은 날들을 함께 했다. 힘든 일상에 지칠 때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여행의 시작은 우리가 스물셋이었을 때, 졸업을 하고 정식으로 취업을 한 후였다.
우리는 30대의 마지막을 꼭 유럽에서 보내자며 다달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른아홉이 될 무렵, 넷이 유럽을 다녀올 만큼의 충분한 돈이 모였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적게는 두 명, 많게는 세명의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엄마의 자리에서 유럽여행을 다녀올 만큼의 긴 시간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천둥벌거숭이들을 1년을 더 키운 40살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짧은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렇게 결정한 첫 번째 여행지가 '교토'였다.
일본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적당한’ 여행지였다.
작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에 꾸린 단출한 짐과 그것보다 더 가벼운 우리의 마음을 비행기에 실었다.
일상의 걱정을 비워낸 자리에는 오롯한 내가 남는다. 누구 엄마나, 누구 아내가 아닌 그저 ‘나’로 말이다.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두 내가 주체가 되어 결정이 된다.
아이들 사진이 아닌 나와 내 친구들 찍고 있으니 20대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첫날 스케줄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와서 누군가 말했다.
“와, 나만 씻으면 되는 거야? 나만 씻고 나만 자면 되는 거야?”
우리는 그 말에 웃으며 동시에 울컥했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여행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누군가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행 내내 비가 왔고, 비 오는 교토의 돌계단을 밟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모든 즐거운 시간들이 그렇듯, 우리의 휴가 또한 빠르게 지나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니어처처럼 작아진 일본의 풍경을 보며 우리의 여행은 마치 동화 ‘오즈의 마법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 같던 우리들은 지치고 불안한 마음을 비우고, 내 안에 이미 있었던 것들로 꽉 채워진 마음을 안고 ‘나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