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모난 돌의 성장기.
사주에 귀인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덕분이었을까.
휴식기를 보내던 중, 이전 직장 대표님의 뜻밖의 도움으로 작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이 계속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깊은 감사와 함께, 내게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신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후 또다시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 나는 약도 점차 줄여가며 더 이상 내 몸과 마음에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행위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면의 어둠이 아닌 외부에서 다가오는 어둠이 나를 덮쳤다.
막내 동생이 우울증을 진단받게 되었던 일이다.
내 기억 속 막내 동생은 어릴 적 발랄하고, 질문도 많고, 명랑한 동생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느 시점부터 동생의 이런 활달함과 밝은 성격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었다.
그때의 나는 다들 겪는 사춘기와 본인의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그런 것으로만 쉽게 생각하고 있었고, 이 생각을 할 즈음의 나는 스스로의 우울증으로 허덕이고 있을 시점이었다.
부모님에게서 막내 동생이 우울증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 깊이 절망이 밀려왔다. 그 소식은 내게 다시 한번 절망의 수렁으로 끌어내리는 듯했지만, 가족 중에서 이겨낸 경험이 있는 건 나뿐이라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걱정하지 말라, 큰 일 아니다”라고 무심하게 말하며 나 자신도 위로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도 허탈한 위안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나 자신에게도 건네는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우울증을 한참 겪고 있을 즈음, 부모님 역시도 많은 노력을 모르게 하셨다고 한다.
사촌 언니가 나중에 말해주기를 나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언니에게 부모님이 연락하여 우울증일 경우 가족으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 타지에 있는 자식을 다시 고향으로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도움을 청했었단다.
사촌 언니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지에 있는 자식이다 보니 부모님에게 도움의 말을 해주었고 부모님 역시도 여러 내용을 찾아보셨던 것 같다.
이러한 경험들이 우리 모두에게 밑거름이 되었던 걸까.
막내 동생의 우울증은 가족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늘 그래 왔던 모습처럼 포장하되 각자의 마음속에서는 다들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자주 내려가지 않았던 고향에 2-3달 간격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부모님과 더욱더 많은 전화를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음속에는 '내가 굳건히 있어야 해. 나는 겪어봤으니까 다들 나에게 물어보는 거잖아. 나는 다 나았으니까 도움이 되자'라는 마인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연락이 잦아지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대화가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이면서 가족 간의 유대가 깊어졌다.
어릴 적 아빠와 그렇게 싸우던 나는 아빠에게 '사랑해 아빠!'라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아빠 역시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가족, 우울증, 성장과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남은 말은 ’부모도 부모 역할이 처음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을 떠올리면, 부모님도 처음으로 자식을 키우면서 겪었을 많은 어려움과 불안을 이해할 수 있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처를 완전히 이해하고 치유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