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모난 돌의 성장기.
내가 태어나던 무렵에 나온 애니메이션이 성인이 된 나를 위로해 줄 줄 누가 알았을까
내 상태는 점차 호전되고 있었고, 동네 필라테스를 스스로 다닐 정도로 많이 나아졌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에 대한 외로움과, 어릴 적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양면적인 모습 때문에 자기 방어적이고 타인과 친해지기를 꺼리는 현재의 나는 모난 돌로써 살아가고 있다.
폭풍같이 찾아왔던 우울증도 잠잠해질 무렵, 독립하고 나서 실제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또다시 1-2년간 살아갔다.
잠잠해진 줄 알았다.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한 뒤, 마음이 맞는(맞았다고 생각한다.)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매일을 재밌게 보냈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이 친구밖에 놀 사람이 없고, 언제 또다시 나를 떠날지 모른다.'라는 생각에 친구가 원하는 대로 늘 맞춰주는 내가 되어 있었다.
일례로, 난 게임을 좋아해서 친구를 만나는 날이 아니면 집에서 게임을 자주 했었다.
친구가 전화를 걸어 “또 게임해? 게임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와서 처음엔 웃어 넘기려 했지만, 속으로는 내게 게임만 남겨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친구가 나를 얼마나 불완전하게 보고 있는지 실감하며 마음속에 상처가 하나씩 쌓여갔다.
그럼에도 친구에게 여전히 정을 주며 서울에서 만난 첫 친구라 본가까지 같이 내려가서 부모님에게 소개했었다.
뒤늦게 부모님이 말씀 주셨었지만, 부모님은 친구와 인사하고 나서 3-4시간 만에 그 친구와 멀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었단다. 그만큼 내가 낮춰서 행동하고 친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부모님에게는 마음 아팠었겠구나 싶었다.
그 친구는 나의 우울증도 알고 있어서, 그 당시에는 나에게 큰 위안과 이만한 친구가 없다는(일하는 스타일도 잘 맞았었고, 내가 모르는 맛집과 마사지 등의 향락의 세계를 알려주었다.) 생각에 직장도 함께 잘 다녔었다.
그 사이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마음은 친구가 던지는 돌에 하나둘씩 멍이 들기 시작했고, 자각하지 못하는 나는 다시 우울증이 찾아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이 답답함을 해소하는 창구로 담배도 시작하게 됐다.
한 날은 담배로도 해소되지 않는 우울감이 나를 엄습해서, 사무실에서 도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로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오기도 했었다.
퇴근 시간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 수많은 인파 속에 공황증세가 찾아와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로 대합실에서 1시간을 식은땀에 젖은 채 앉아있기도 했었다.
상황이 다시 이상해진 것을 드디어 인지한 나는, 친구에게 직장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였다.
내 걱정을 조금 하던 친구는 '근데 네가 그만두면 이 일 내가 다 해야 하잖아?’라고 하면서, 자신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진행 중이던 모든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퇴사하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마침내 내 가슴속에 쌓인 상처의 돌 탑이 그 말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 친구는 내 인생에서 도움 되지 않는 친구란 것을 자각한 나는 비로소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그 느낌도 이상했다.
친구랑 멀어지기를 선택한 뒤로, 내 마음은 더 가벼워졌고 친구가 하는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친구와의 인연을 끊었던 그날은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일을 그만둔 뒤 어느 여름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나에게 친구가 으레 전화를 걸어 '또 게임하냐?'라는 말을 하였고, 나는 '어 나 게임해. 나 게임 좋아하는 거 알면서'라는 말과 함께 통화종료 후 당연하다는 듯이 발신자 차단과 메신저 차단을 하였다.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매끄럽고 당연했다.
이 이후로 친구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나 역시도 친구를 찾지 않았다.
이미 사고체계가 긍정적이지 못한 그 당시의 나는 또다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였다는 생각과 이후 여러 일들로 인해 더욱더 자기 방어적이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며, 마치 끝없는 구석에서 쫓겨나는 고양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불편한 눈빛을 보내면, 나는 그저 그들의 시선에 움츠러들고 더욱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내 마음속의 불안과 두려움이 표정과 행동에까지 스며들었다.
이 모든 일들은 짧은 시간 내에 발생하지 않았다.
인생이 달콤한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행복한 기억들로 쌓여갔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썩어버린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우울과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달콤함 대신 쓴맛과 악몽처럼 쌓인 기억들이 내 20대를 채워갔고, 마치 시들어가는 과일처럼 점점 더 깊은 상처와 무기력함으로 얼룩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