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일곱의 첫 일일알바 도전기
내가 열일곱일 땐 한 달 용돈으로 20만원을 받았다.
급식이 맛없기로 소문난 학교를 다녔기에 식사를 신청하지 않는 대신 용돈을 타서 매점 메뉴로 끼니를 해결하고 티머니 교통카드에 5~6만원을 채웠다. 돈을 모은다는 개념과 소비의 즐거움을 몰랐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돈을 사용했고 이따금씩 갖고 싶은 가방이나 운동화가 생기면 용돈을 아껴 구매하곤 했다.
나는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생활을 하고 학원을 다니며 평범한 일상을 보냈는 데,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친구들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잡화점에서 카운터를 봤다. 스스로 시간을 들여 일을 하고 얻는 돈이라! 얼마나 멋져보이던지. 하지만 나는 알바몬이나 알바천국을 사용할 줄 몰랐고, 이력서는 더더욱이 어려운 벽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친한 친구가 일일알바를 했다며 관심이 있으면 지원해보라고 바람을 넣었다. 2010년 당시 시급은 4,110원이었는데, 주말 점심타임인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을 일하고 현금 2만원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니. 그 당시 2만원은 꽤 큰 돈이었기에 흔쾌히 수락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말을 기다렸다.
"어서와요~ 일은 어렵지 않을거에요."
처음으로 독대한 사장님은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지 않고 바로 설거지 방법을 알려주셨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따뜻한 물에 세제를 풀고 헹구는 것, 수세미로 불린 접시를 훑고 깨끗한 물에 담궜다가 식기세척기를 돌리는 것 그리고 수저를 닦는 것이었다.
'뭐야, 이렇게 쉽다니. 집에서 한 설거지가 얼만데 이 정돈 쉽지~'
그 땐 몰랐다. 식사 시간에 사람이 몰리면 접시가 얼마나 많이 쌓이는 지. 그 가게는 애슐리나 쿠우쿠우처럼 대형 프랜차이즈 뷔페가 아니었고, 나는 방문한 적이 없어 손님이 얼마나 있는 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두 세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있는 걸 보고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사람이 없는 집이라면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을 텐데, 감히 예상했다는 게 웃기다. 그렇게 12시가 되고 와글와글 바글바글 떠들며 몰려드는 손님에 흠칫 놀랐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손님들은 순식간에 음식을 비우고 접시를 교체했다. 테이블 가득 접시를 펼쳐놓고 뷔페를 만끽했으며 홀에서 접시를 수거하는 알바생은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수거한 접시를 불리고 헹구고 쌓아두면 서버가 낑낑대며 채우기를 반복했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몸은 자연스럽게 세팅이 되는데 정신은 아득해진다.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고 다른 곳에 와있는 것처럼 몽롱해진다. 이렇게 시계를 볼 틈 없이 일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1시, 사람들이 점차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이제 두 시간이 되었구나. 겨우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구나! 오후 2시나 된 줄 알았는데, 여태 한 만큼 더 해야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밖에서 돈을 버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가만히 서있다보니 발과 종아리가 점점 붓는 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다보니 손에 땀이 차 장갑과 손이 달라붙어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것만 마무리 하면 돼요~"
드디어. 오후 2시가 넘어가자 홀이 정리된다. 신고 있던 운동화가 젖어 양말이 축축해지고 설거지 거름망이 꽉 찼던 그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남아있는 접시와 수저를 해치우고 설거지 통과 배수구를 모두 닦고나서 비로소 나는 주방에서 해방되었다. 일은 3시에 끝나지만 알바생들은 남아있는 뷔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몇 명은 일당을 받고 바로 귀가했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남아서 꿋꿋하게 혼밥을 즐겼다. 원형 테이블에 혼자 두 세 접시를 펼쳐놓고 초밥과 롤을 먹었다.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되리라, 일을 소개시켜준 친구에게 고마웠고 일을 해서 번 돈이기에 쉽게 쓸 수 없어 몇 주 동안 쓰지 못하고 가지고만 있었다.
일 년이 넘은 뒤 그 가게는 없어졌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나의 첫 아르바이트 장소. 가끔은 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고된 노동의 경험과 돈의 귀함을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