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작업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나 주말에 아르바이트했다!'
내년이면 고3. 수능은 일 년으로 준비할 수 없다며 고등학생 시절 내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평일에는 수업이 끝난 뒤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주말에는 '학사'라고 운영되는 건물에 출석했다. 몰래 쪽지를 주고받고 MP3로 노래를 듣는 게 유익한 낙이었던 2012년, 친구들은 용돈을 벌 겸 일탈행위로 일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옆 반의 누구는 물류창고에 갔대. 나는 이번에 화장품 공장에 다녀올 거야.라는 심심치 않은 아르바이트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일하고 일당이 n만원이래!'라는 말에 혹해 찾아봤다. 제과 회사에서 주말 일일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공고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구할 땐 이력서를 적지 않았다. 문자 지원을 받았으며 간단히 나이와 이름, 거주지역 등 기본 정보를 확인한 뒤 일을 시켜주었다.
2012년 당시 시급은 4,580원이고 업무는 9-18. 8시간을 근무하고 점심시간에는 식사를 제공했다. 친구들은 둘셋 같이 지원하는데 나는 일정에 맞는 이가 없어 덜렁, 혼자 지원했다. 내가 맡은 일은 짝을 지어 2개짜리 묶음 상품을 4개 번들 세트로 만드는 것이었다. 말이 짝이지 통성명을 할 틈도 없이 바로 일이 시작되었다. 앞의 팀이 두 개짜리 과자의 테이프를 떼서 우리에게 줬고, 우리는 두 개짜리 묶음 양 옆에 하나씩 대고 위아래로 테이프 칠을 했다. 작업은 어렵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같은 속도로 동작을 반복한다는 건 넋을 나가게 했다. 그 당시의 나는 휴대폰이나 시계를 제대로 들고 다니지 않았다. 때문에 벽에 붙어있는 시계로 간간히 시간을 확인했는데 말도 안 되게 느린 시간을 보고 탄식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되었겠지?'
'아니.ᐟ 아직도 11시란 말이야?'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대체 이 시간은 언제 흘러가는 걸까?'
그렇게 백만 스물두 번째 혼잣말을 내뱉을 때쯤에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셋, 넷. 대부분 40대 이상 아주머니가 많았고, 그들은 익숙한 듯이 자리를 잡고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했다. 나야 뭐, 일행이 없으니 별 수 있나. 대충 혼자 온 사람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침묵의 식사시간.. 다행히 연락을 하던 친구가 있어 문자로 상황보고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영겁의 시간이 돌아왔다. 세상에 이렇게 지루한 일이 있다니. 나의 아버지 역시 가전제품 회사에 다니셨는데, 당신은 하루 종일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하셨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겠더라. 차라리 엄청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면 오히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 텐데 그 반대의 상황이니 어떻게 서든 집중할 만한 생각을 해야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4만원이 채 되지 않는 일당.
벌어들인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언젠가 시간을 들여 돈을 벌게 된다면, 반복 작업만큼은 하지 않으리.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을 하리라. 또한, 이러한 일을 몇 년 동안 버텨온 나의 아버지에게도 존경심이 생겼다. 직업을 가지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참 어렵고 대단한 일이구나. 가족과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희생하는 것은 참 무거운 일이구나. 그 후로 나는 어떤 직업도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은 그 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 일을 해나가는 것 자체가 굉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