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보고 도전하면 큰코다칠걸
질풍노도의 대 2병에 걸린 21살의 나.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 들자 도피성 휴학을 하게 되었다. 재능도 없고 흥미도 떨어진 그때, 자영업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쉬고 싶은 날 쉬고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고 노력하는 만큼 번다니.ᐟ 굳이 4년제 대학을 꾸역꾸역 다녀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예 자퇴를 하려고 했다. 졸업할 자신이 없었고, 스포츠를 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게 막막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휴학을 한 뒤 가게일을 배우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게 플라워샵의 막내일이었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플라워샵은 동네의 작은 가게였기 때문에 혼자 운영을 맡아서 하셨다. 직원이자 사장님이신 어머니는 나에게 자잘한 일을 맡기며 하나씩 알려주셨다. 가게에 출근을 하면 앞치마를 두르고 바닥을 쓸었다. 밤새 세월을 맞고 마른 잎들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게 앞에는 종종 담배꽁초와 종이컵이 떨어져 있어 그것 또한 눈에 보이지 않게 주웠다. 컴퓨터와 프린트기를 켜고 흙이 마른 화분에 물을 줬다. 화분에 물을 줄 때는 매일 조금씩 주는 게 아니라 며칠, 몇 주에 한 번 흙이 흠뻑 적셔지도록 듬뿍 줘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화분에 담겨있지 않은 싱싱한 꽃은 물통에 담아 꽃 냉장고에 보관했다. 꽃을 담은 물통은 일주일에 두 번 새로 갈았는데, 하루는 매주 수요일로 꽃시장에서 꽃을 들여오는 날 하루는 교회 꽃꽂이를 하는 토요일이었다.
일을 하며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새벽 꽃시장에 가는 것이었다. 해가 뜨려고 하는 촉촉한 새벽녘에 방문한 양재, 강남 꽃시장은 이 새벽에도 이렇게 활기찬 시장이 있구나. 놀란다. 빨간 다라이에 알록달록한 꽃이 한 묶음씩 포장되어있고, 촉촉한 흙내음과 꽃 향기가 섞여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하는 새벽시장. 그곳에서는 꽃을 낱개로 파는 것이 아니라 '한 단' 단위로 판매했다. 한 단은 한 묶음으로 노란 고무줄이나 신문지에 감싸진 양을 말한다. 간혹 내 취향에 맞는 소재를 하나 둘 사 오면 사진을 백만 장쯤 찍고 계속 들여다보곤 했다.
매주 토요일엔 재능봉사의 일환으로 성전 꽃꽂이를 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이 올라가는 단상의 양 옆으로 꽃장식을 두는데, 매주 다른 콘셉트로 준비를 해야 했다.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나름 디자인 스킬을 쌓을 수 있는 경험이고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어쩌다 한 번씩 사장님이 왼쪽을 꽂으시고 오른쪽을 나에게 맡기셨는데, 대칭이 될 수 있도록 꽂는 연습이었다. 조립이나 뚝딱거리면 고정되는 소재가 아니다 보니 쉽지 않았다. 역시 뭐든 경험치가 쌓여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주간 소소한 일감을 하다 처음으로 꽃다발, 꽃바구니 주문을 받고 만들게 되었다. 손님은 눈앞에서 기다리는데 내 손은 허둥지둥, 익숙한 척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대화도 꽃다발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다행히 어찌어찌 어깨너머로 본 디자인으로 만들긴 했지만 내 눈엔 엉망진창이었다. 예술은 주관적인 평가를 받으니 나에겐 별로여도 상대방에게는 그럴싸해 보이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 뒤로 몇 번 배우려고 시도했지만 나는 예술 감각, 미적센스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만큼 열의가 없었던 것 일수도.
'진상'. 소비자의 권위를 내세우며 무례한 언행을 하는 진상 고객도 분명 있었다. 하루는 자신의 아내 생일이라며 꽃다발을 사 갔는데, 다음날 찾아와 꽃이 시들시들하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나는 환불해줄 수 없는 이유를 두 가지 말했다. 첫째는 우리는 상태가 좋지 않은 꽃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꽃이 바깥공기와 사람 손에 의한 접촉, 주변 온도에 따라 금방 상할 수 있다는 것. 솔직히 생일파티를 잘 마치고 나서 썼던 돈이 아까우니까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괘씸한 마음이 들었고, 이런 경우 절대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은 바로 환불을 해주셨다. 사람 손을 탄, 한 번 나간 생화는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러셨냐며 도끼눈을 뜬 나에게 '어차피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환불을 요구할 거야,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원하는 것을 주고 보내는 게 낫다.'라고 하셨다. 세상에는 이성적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 모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거라고. 그때 '성인의 이성적인 자세'를 배웠다. 나는 아직 어리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은 취미대로 남기고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업으로 삼으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 나는 후자였던 것 같다. 꽃이 아름답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는 사람이 있던데, 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일로만 바라보니 정이 가지 않았다. 아차, 이대로면 이도 저도 아니겠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또 한 번 도피했다. 그렇게 나와 플라워샵의 인연은 끝이 났다.
단순히 꽃을 좋아하고 일하는 게 아름다워 보여서, 미적 감각이 조금 있는 것 같아서 시작하는 분이 없었으면 한다. 생각보다 마케팅의 길은 어렵고, 특히 비 주류 소비재인 꽃은 트렌드를 꾸준히 공부하고 영업을 잘해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노하우를 일구는 데 약 5년이 걸렸고, 10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지역에서 알아주는 꽃집 타이틀을 달았다. 물론 누구나 '꾸준히', '열심히' 할 수도 있지만, ;효율적'으로 '잘'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꼭 꽃집에서 짧게라도 일을 해보고 결심하는 것을 권장한다. 잘하는 데 열정까지 있으면 베스트지만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건 쉽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