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언제부터 버텨야 하는 구조가 되었을까

by 모온


관계가 구조가 되는 순간은
대개 분명하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선을 넘는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되돌아가지 않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방향이 생긴다.


처음에는 선택처럼 보인다.
지금은 힘들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나아질 것 같고,
이 정도는 조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불편함이 곧 위험이라는 신호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 시기의 나는
관계를 ‘유지하는 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가 되지 않게 만드는 쪽을 먼저 선택했다.
말을 줄이고,
요구를 낮추고,
상대가 불편해할 만한 감정은
미리 접어두는 쪽이 더 안전해 보였다.


관계는 점점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처럼 느껴졌다.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선택.
결혼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관계는 안정의 형태를 띠었다.
나는 그걸 안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안정이라기보다 고정에 가까웠다.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대신
움직일 수 없는 구조.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점점 나를 조정하는 일이 되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줄여갔다.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먼저 물러났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내 감정을 사전에 검열했다.
그 과정이 오래 반복되자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졌다.


무너짐은
대개 소리가 없다.
갑작스럽게 부서지기보다는
하루에 아주 조금씩
선택지가 줄어드는 방식으로 온다.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줄고,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 늘어난다.
그게 나의 의지가 아니라
습관이 되었을 때,
관계는 이미 구조가 되어 있었다.


그 구조 안에서
나는 버티고 있었다.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빠져나올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떠나는 쪽이 더 큰 손실처럼 보였고,
유지하는 쪽이 덜 위험해 보였다.


이 글은
관계가 왜 유지되었는지에 대한 변명이 아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기록도 아니다.
다만 내가 언제부터
관계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 경계를 돌아보는 시도다.


다음 이야기는
그 구조 안에서
내가 어떻게 나를 의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심이
어떻게 붕괴로 이어졌는지에 관한

기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