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질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저항이 아니라 판단이다.
문제가 있다는 감각이 흐려지고,
그걸 문제라고 부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처음엔 설명이 필요했다.
왜 불편한지,
왜 이 말이 걸리는지,
왜 이 상황이 힘든지.
나는 스스로에게 이유를 붙였다.
상황이 이러하니까,
상대가 원래 그렇다니까,
지금은 예민한 시기라니까.
그 설명들이 쌓이면서
감정은 점점 뒤로 밀렸다.
느낌보다 판단이 앞섰고,
판단보다 합리화가 빨랐다.
“이 정도는 다들 겪는 거야.”
“이건 큰 문제가 아니야.”
“내가 조금만 조심하면 돼.”
그렇게 감정은
참고 넘어가는 항목이 되었다.
불편함은
조정 가능한 변수로 취급됐다.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신호로 읽히지 않았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게 되는 방식은
아주 조용하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준을 낮추게 된다.
예전 같으면 멈췄을 지점에서
그냥 지나가게 된다.
나는 점점
‘이상한 상황’보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를 먼저 떠올렸다.
상대의 말보다
내 반응을 먼저 점검했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이 타당한지부터 검열했다.
그 과정에서
기억도 조금씩 바뀌었다.
분명히 힘들었던 순간이
나중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일”이 되었고,
확실했던 감정은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건 망각이 아니라
재정렬에 가까웠다.
관계를 유지하기에
가장 불편하지 않은 방식으로
기억을 다시 배치하는 일.
문제가 없어 보이는 상태는
안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정은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만들어진다.
느끼지 않는 대신 유지하는 구조.
그때의 나는
무너지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다만 계속 피곤했고,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 쌓였다.
이유 없는 공허처럼 느껴졌지만
실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하나로 묶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 편을 쓰는 이유는
과거를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문제가 왜 그렇게 오래 문제로 보이지 않았는지,
그 메커니즘을 남기기 위해서다.
다음 이야기는
이런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나를 줄이는 선택들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그 ‘기술들’에 관한 기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