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관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by 모온


어느 순간
더 이상 설명이 늘어나지 않았다.
이유를 붙여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고,
조정해도 관계가 안정되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왜 이 사람이 이러는지가 아니라
왜 이 관계 안에서
내가 계속 사라지는지였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을 시도했지만
해결된 건 거의 없었다.
다만
문제가 다른 형태로 반복될 뿐이었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점점 나를 잃고 있었다.


그제야 보였다.
이건 특정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전체의 구조라는 것.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틀.


그 구조 안에서는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었다.
누가 더 참았는지,
누가 더 노력했는지도
결론을 바꾸지 못했다.
이미 관계는
버텨야만 유지되는 상태였고,
나는 그걸 감당하는 역할에 고정돼 있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구조를 인식하는 일은
관계를 포기하는 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온 모든 선택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해야 했으니까.


그 순간에도
분노가 먼저 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아, 이거구나.
이게 내가 계속 설명할 수 없던 이유였구나.


그 인식은
즉시 떠나는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않게 만들었다.
참아야 할 이유를 찾지 않았고,
괜찮은 척할 말도 줄어들었다.


바닥에 닿았다는 감각은
절망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인식에 가까웠다.
그 아래에는
관계도, 설명도, 조정도 없었다.
남아 있는 건
지금 이 구조에서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뿐이었다.


이 편에서
이야기는 멈춘다.
떠나는 선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결론도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었고,
성격의 충돌도 아니었으며,
누군가를 고쳐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구조였다.


여기까지가
버텨야 하는 구조 안에서
내가 무너져 갔던 과정의 기록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의 시간이 된다.
선택 이후의 시간,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온 변화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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