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프롤로그 ― 이미 달라진 쪽에서

by 모온

어느 날부터
나는 하루를 시작할 때
각오를 세우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오늘을 어떻게 버틸지,
어떤 말을 삼켜야 할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지를
아침마다 정리해야 했다.
하루는 늘 준비가 필요한 것이었고,
그 준비의 대부분은
나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지금의 하루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침은 여전히 오고,
해야 할 일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책임도 그대로 남아 있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하루다.


그런데도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나는 더 이상
같은 기준으로
이 하루를 통과하지 않는다.


예전의 기준은
유지였다.
관계가 유지되는지,
상황이 깨지지 않는지,
어제와 비슷하게 오늘을 넘길 수 있는지.
그 기준 안에서
나는 자주 나를 밀어 넣었다.
불편함을 설명으로 덮고,
의문을 책임으로 눌러두면서.


그 기준은
겉으로는 성실해 보였지만
안쪽에서는
나를 계속 닳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기준이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더 잘해도 나아지지 않고,
더 이해해도 편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버린 뒤였다.


그때 나는
무언가를 결심하지 않았다.
떠나겠다고 선언하지도 않았고,
달라지겠다고 다짐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오늘을 넘길 수 없다는 감각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기준이 바뀌었다.


이해받기보다는
내가 납득할 수 있는지,
유지되느냐보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지,
괜찮아 보이느냐보다
지나간 뒤에도 숨이 남아 있는지.


그 기준은
눈에 띄지 않아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서 더 조용히
하루를 바꾼다.


이 연재는
극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회복의 서사도,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기록도 아니다.


다만
같은 하루를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전혀 다른 기준으로
자신을 통과시키기 시작한 사람의
느린 기록이다.


아직 잘 살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전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이후의 하루들을
이 기준으로 적어보려 한다.
무너진 뒤에야 생긴 기준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 쪽으로.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나는 이미
다른 기준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