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바뀌었다고 해서
삶이 곧바로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하루가 더 또렷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참았을 장면에서 멈춰 섰고,
넘겼을 상황에서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것들이
갑자기 전부 질문이 되었다.
이게 정말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인지,
이 불편함이
나의 몫이 맞는지,
왜 항상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지.
이 질문들은
크지 않았고,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다만 하루를 통과하는 속도를
계속 늦췄다.
나는 처음으로
‘오늘을 잘 넘기는 것’보다
‘오늘을 덜 닳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 선택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버티지 않겠다는 말은
포기처럼 들릴 수 있고,
무책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유일하게 남은
자기 보호였다.
그날도
아무 일 없는 하루처럼 시작했다.
해야 할 일들을 했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했고,
겉으로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지금 상황이 이러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
그 문장들을
입 안에서 굴리지 않았다.
대신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느꼈고,
힘들면 힘들다고 인정했다.
해결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 감각을 지우지 않았다.
그 하루가 끝났을 때
나는 여전히 피곤했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고,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숨이 남아 있었다.
그전까지의 하루들은
늘 끝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자도 회복되지 않았고,
아무리 이해해도
다음 날이 두려웠다.
그날은 달랐다.
잘 산 하루는 아니었지만,
나를 더 망가뜨리지 않은 하루였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확인한 변화였다.
기준이 바뀌면
하루의 질감이 달라진다는 것.
결과가 아니라
통과 방식이 바뀐다는 것.
이후로도
나는 자주 흔들렸다.
다시 예전 기준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 기준은 익숙했고,
사회적으로는 더 안전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한 번이라도
덜 닳는 하루를 경험한 사람은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
몸이 먼저 기억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바뀌지 않은 채로
이 기준을 계속 연습하고 있다.
매번 성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디로 돌아가지 말아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기준이 적용된
작은 하루들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조용히 방향이 달라지고 있던 시간들.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나는 이제
버티지 않는 쪽을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