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다시 참으려다 멈춘 순간

by 모온


기준을 바꿨다고 해서
항상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기준은
자주 흔들렸다.


어떤 날에는
예전의 방식이
너무 쉽게 손을 잡아끌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한 문장들이
먼저 떠올랐다.


“이 정도는 참아야지.”
“지금 이걸로 문제 만들 필요는 없잖아.”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거야.”


그 문장들은
나를 괴롭히기보다는
오히려 안심시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티는 쪽이
더 어른스럽고,
더 안전하고,
덜 튀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날도 비슷했다.
딱히 큰 사건은 없었고,
누가 소리를 지른 것도,
나를 몰아붙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금 불합리했고,
조금 불편했고,
조금 억울한 상황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마음속에서
정리가 끝났을 일이다.
‘그럴 수 있지’로 덮고,
‘내가 이해하자’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말을 삼키고,
몸을 한 번 접고,
하루를 빨리 통과하려는 방향으로.


그때
아주 짧은 순간
몸이 먼저 멈췄다.


숨이 얕아졌고,
가슴이 조여 왔다.
머리는 아직
참는 쪽을 선택하려고 했는데,
몸은 이미
그 선택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건 감정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라는 것을.


참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이걸 또 참는 순간
오늘의 내가
얼마나 더 닳아버릴지를
몸이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아주 작은 선택을 했다.
상황을 뒤집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설득하지도 않았으며,
정답을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한 발 물러섰다.
바로 해결하지 않기로,
지금 결정하지 않기로,
나를 밀어붙이지 않기로.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였다.
갈등도 없었고,
결과도 없었고,
눈에 띄는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날 나는
다시 참는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 같았으면
그 선택을 한 뒤
스스로를 칭찬했을 것이다.
‘그래도 잘 넘겼다’고,
‘괜히 문제 만들지 않았다’고.


그날은 달랐다.
칭찬도,
자책도 하지 않았다.
그냥
덜 닳은 상태로
하루를 끝냈다.


기준은 이렇게 작동한다.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되돌아가려는 순간마다
아주 조금씩
방향을 틀게 만든다.


완벽하게 지켜내지는 못한다.
나도 여전히
자주 헷갈리고,
가끔은 다시
버티는 쪽을 선택한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 나는
어디까지가 나의 몫이고,
어디서부터가 아닌지를
몸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


이 기준은
나를 강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덜 무너지게는 한다.


그리고 아마
이 기록은 계속
이런 식일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보다
멈춘 순간들,
변화보다
되돌아가지 않은 선택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도,
겉으로는 같은 하루처럼 보여도,
나는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


버티지 않기로 한 기준은
이렇게
조용히 나를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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