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바꾸고 나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내 하루가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조금 덜 참았을 뿐인데,
조금 늦췄을 뿐인데,
조금 멈췄을 뿐인데
주변에서는
이전과 다른 나를
금방 알아봤다.
“요즘 왜 그래?”
“예전 같지 않네.”
“그 정도는 넘길 수 있잖아.”
그 말들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조정에 가까웠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손짓 같았다.
예전의 나라면
이미 설명을 시작했을 것이다.
왜 그런지,
어디가 불편했는지,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혹시 오해할까 봐,
괜히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나는 늘
내 선택에
이유를 덧붙였다.
그날도
입 안까지
설명이 올라왔다.
말로 정리하면
상대가 이해해 줄 것 같았고,
이해받으면
내가 덜 불안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알았다.
이 설명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다시
예전 기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그래서
이번에는
말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였고,
짧게 웃었고,
대화를 더 키우지 않았다.
불편함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설명하지 않자
상대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아주 잠깐
불안해졌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괜히 관계를 망치는 건 아닐까?’
익숙한 질문들이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질문들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나를 설득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날도
겉으로 보면
아무 일 없는 하루였다.
갈등은 커지지 않았고,
관계가 끊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날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됐다.
설명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관계와,
설명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다르다는 것.
기준이 바뀌면
선택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침묵의 방향도 달라진다.
말하지 않기로 한 선택 역시
하나의 행동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 실감했다.
나는 여전히
모든 순간에
침착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다시 길게 설명하고,
다시 이해받으려 애쓴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설명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이 기준은
사람을 더 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색한 공기를
더 오래 견디게 한다.
하지만 그 대신
하루가 끝났을 때
나는
나에게 빚지지 않는다.
이 기록은 아마
계속 이런 이야기일 것이다.
잘한 선택보다
안 한 선택들,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순간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나를 다른 쪽으로
데려가고 있던 하루들.
나는 여전히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다만 이제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쪽을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