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을 줄이고,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아지고,
그래도 설명하고 싶은 사람을 구분하게 되면서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늘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내가 왜 그런지,
내가 어떤 마음인지,
내 선택이 어떤 이유였는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설명은
항상 바깥을 향해 있었다.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까지
자세히 말해본 적이 없었다.
왜 힘든지,
왜 그 말에 유독 마음이 걸리는지,
왜 어떤 순간에는
괜히 더 서운해지는지.
그걸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대신
빨리 정리해서 넘기려고 했고,
괜찮은 쪽으로 해석하려 했고,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나를 맞추려고 했다.
그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설명을 멈추고 나니까
남는 게 하나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
예전에는
설명하면서
그걸 덮어버렸다면,
지금은
그걸 그대로 보게 됐다.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이렇게까지
헷갈리는 사람이었나 싶었고,
이렇게까지
확신이 없는 상태로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그대로 두었다.
억지로 결론 내리지 않고,
굳이 괜찮은 이유를 찾지 않고,
그냥
“지금 나는 이렇구나” 하고
머물러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힘들었던 건
상대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자꾸 뒤로 미뤄왔기 때문이었다는 걸.
내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 했고,
내 기준보다
관계를 먼저 맞추려 했고,
내 속도보다
흐름을 따라가려고 했던 시간들.
그게
쌓여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요즘은
순서를 조금 바꾸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나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내가 지금
어디까지 괜찮은지,
어디부터 힘든지,
이 선택이
나에게 맞는 건지.
그걸
천천히 확인해보고 나서야
다음을 생각한다.
예전보다
조금 느려졌지만,
대신
덜 흔들린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바로 방향이 바뀌지 않고,
상황 하나에
나를 맞추느라
지치지 않는다.
이게
완전히 단단해진 상태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헷갈리는 날도 있고,
다시 예전처럼
설명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다.
그래도
이전과 다른 건 하나다.
이제는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답을 빨리 내리기보다,
나를 먼저 듣는 쪽을 선택한다.
조금 어설퍼도,
조금 느려도,
그게
나를 덜 잃어버리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서.
나는 지금,
나를
조금 더 먼저 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