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을 줄이면서
분명 편해진 건 맞다.
괜히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상황을 정리해서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지 못한 채로
남겨두는 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여전히 설명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에게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어떤 관계에서는
이 정도로 두는 게 더 편했다.
그런데
딱 몇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내가 왜 그런지,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 더 정확하게
전하고 싶어졌다.
설명을 하고 싶다는 건
어쩌면
이해받고 싶다는 말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길 바라고,
내가 한 선택이
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를 바라고,
내 마음이
왜 그랬는지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
예전에는
그 마음이 너무 커서
거의 모든 관계에서
설명을 반복했다.
지금은
그걸 구분하게 됐다.
모든 사람에게
내 마음을
끝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직 내가
그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
그래서 요즘은
설명을 아예 끊기보다는
조금 다르게 한다.
예전처럼
설득하려고 설명하지 않는다.
이해시키려고
길게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느낀 만큼만,
내가 말할 수 있는 만큼만
조용히 꺼내놓는다.
“나는 그때 이런 마음이었어.”
“그래서 그렇게 한 거야.”
그 정도.
그 이상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걸 받아들이든,
그대로 흘려보내든,
끝내 이해하지 못하든
그건 이제
내가 붙잡을 영역이 아니니까.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하고 나면
예전보다
덜 지친다.
전달이 완벽하지 않아도,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나를
왜곡하지 않고
말했으니까.
설명을 줄인다는 건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에게나
나를 다 쓰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설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아직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두 가지를 같이 가져간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와,
그래도 설명하고 싶은 사람.
그 사이에서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덜 지치게
머무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완벽하게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내 마음이 닿았으면 하는
그 마음까지
버리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마
지금의 나는
그 정도 균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