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는 개춘기

2006년

by 모레

미운 7살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울고 떼쓰고 고집을 피우며 행동이 난폭해지는 7살 무렵을 그렇게 말한다.


강아지들에게도 그런 나이가 있다. 개린이들의 개춘기라 불리는 시기로 쉽게 말하면 강아지의 사춘기다. 이갈이를 시작하는 6~7개월 사이에 발생하는데 그때는 이가 간지러워서 집안에 온갖 물건들을 씹어 놓기 일쑤다. 수컷 강아지의 경우 한쪽 다리를 들고 기둥이나 벽 모서리마다 소변을 보는 마킹 행동이 나타나기도 하고 행동도 활발해져 천방지축 나부대면 통제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흰둥이의 개춘기는 파보장염과 교통사고를 겪고 이겨내는 과정이 있어서 조금 늦게 찾아왔다. 산책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2006년 무렵부터 3살 무렵까지는 딱 그 미운 개린이, 개춘기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이갈이는 알맞은 타이밍에 찾아왔는데 흰둥이 이갈이 시절 집에 있던 인형들은 모두 표정이 없었다. 이가 간지러웠던 흰둥이가 인형들의 눈과 코를 모두 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흰둥이의 개춘기가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조금 늦게 찾아온 개춘기로 나는 열심히 달려야만 했었다.



개춘기 흰둥인 사진이 별로 없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흰둥이는 온 집안을 후다닥거리며 뛰어다니기를 좋아했다. 침대나 소파에서 내려올 때도 그냥은 내려오지 않고 마치 하늘다람쥐가 나무를 옮겨 다니듯 휭~ 휭~ 점프를 뛰며 날아다녔다. 그렇게 천방지축 까부는 통에 포커스를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끔 예쁘게 앉아 있거나 얌전히 놀고 있는 모습을 찍어 주려 하면 어느새 자리를 뜨고 난 후였다. 역시나 글을 쓰기 위해 그때의 사진을 찾아보니 1살 반 시절의 흰둥인 하품하는 사진이 제일 많았다.



달리기를 싫어하는 내가 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외출만 하면 달리는 흰둥이 때문이었다.


트라우마를 완전 극복한 흰둥이는 이제는 썰매견이라도 된 듯 밖에만 나가면 뛰기 시작했다. 간혹 실수로 줄을 놓쳐버리면 100m 트랙 위 출발 신호와 함께 결승선으로 향하는 우사인 볼트처럼 튀어나갔고 달리기엔 재능이 하나도 없는 나는 그런 흰둥이를 잡기 위해 숨이 넘어가게 뛰었다. 하지만 겨우 흰둥이에게 닿으려는 순간 멀어지고 이제 진짜 잡았다 하는 순간 빠져나가는 통에 늘 녹초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너, 이놈시키.이리 안 와~~ 빨리~!!


우아~
누나, 아인슈타인이 틀렸어요.
난 어쩜 빛보다 빠를지도 몰라요.

누나, 나 잡아봐라!!


너 누나가 잡으면 가만 안 둬?
이놈 새끼 따라와~
집에 가서 너 아주... 내가 그냥...



근데 너, 어디서 뭐 하다가 왔길래 이 모양이야!
이 흙탕물은 다 뭐고, 이 가시는 다 어디서 붙어왔어?
아주 그냥~~ 흰둥이 이놈 시키야



아, 잡혔다. 누나 나 되게 빠르죠?

어, 이게 아닌데... 나 뭐 잘 못 했어요?

지금 나 혼나는 거 맞죠?
(급) 잘못했어요.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도 끝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목욕이 남아 있었다. 개춘기 시절 흰둥이는 목욕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나는 저 밑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겨우 끌어올려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목욕을 마치고 털만 말리면 되는 순간, 집 안에서까지 '나 잡아봐라'를 시도하는 흰둥이였다.

내가 화를 내면 흰둥이는 엄마 품으로 도망쳐 의기양양 반항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결국 반성의 시간뿐이었다.



먹성은 또 얼마나 좋은지, 먹을 수 있는 것도 먹었고 씹어서 뱉더라도 먹을 수 없는 것도 입속으로 가져갔다. 그런 흰둥이 앞에서 무엇을 먹는다는 건 고도의 심리게임이었다. 그렇지 않고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손에 들고 있던 그것이 무엇이든 이내 흰둥이 입속에 들어가 버렸다. 흰둥이는 한번 입에 문 그것은 절대 뺏기리 않겠다는 듯 고집을 부렸고 웬만해서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거나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나 물건을 입에 물긴 했어도 실제로 먹은 적은 없었다.



더는 천방지축, 고집쟁이로 키울 수 없어 놀이와 훈련으로 개춘기를 이겨내기로 했다.

이렇게 끌려다닐 수야 없지 그래도 내가 흰둥이보다 서열이 높은데.

흰둥이는 하루에 하나씩 훈련을 해 나갔다. 생각보다 배움이 빨랐고 신기하게도 새로운 걸 배운는 일을 재미있어했다.


앉아, 일어서, 엎드려, 누워, 굴러, 기다려!

손, 만세, 뒤로, 돌아, 가져와!

삑삑이, 당근이, 깡총이, 바나나, 사자,

지금 많이 알려진 노즈 워크도 흰둥이는 10년 전에 이미 마스터했다.


나름 혹독훈련을 받은 날엔 지쳐서 아무 데서나 잠을 잤고, 침대에 다 오르지 못한 채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흰둥이는 3살 무렵까지 천방지축 개린이, 개춘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너 잠든 거 맞지?


아... 아.. 직도... 안 갔네!

눈 뜨고 싶다.

해야 할 장난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