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넌?

2006년 여름

by 모레

다친 다리는 나았지만 자세히 보면 걸음걸이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등산을 즐길 만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제 더는 아프거나 다치지 말기를 바라며 흰둥이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개껌을 씹으며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이상한 녀석이 우리 집에 왔다.
전에도 갈색 털의 한 녀석이
내 방석에서 잠을 자고,
내 개껌을 씹고,
내 장난감을 가지고 놀더니 허락도 없이
내 누나 품에 안겨서는 한 달을 지내다 갔다.
그런데 이번에 온 이 녀석은
형아 품까지 점령해 버렸다.

대체 누구냐, 넌?



그 시기 우리는 두 번의 짧은 임시 보호를 했었다.

첫 번째는 흰둥이가 1살이 되기 전이었고, 두 번째는 흰둥이가 1살 반이 되던 이 시기였다.

처음 임시 보호하던 강아지와는 각별하진 않았어도 간식을 나눠 줄 만큼 탈 없이 지냈는데 1살 반이 된 흰둥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질투가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은 의외였다.


흰둥이는 가족들이 다른 강아지를 안거나 먹을 것을 주어도 까칠하게 굴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산책 중에 다른 개들을 보면 짖거나 먼저 달려들지 않고 상대가 호감을 보이면 그제야 천천히 인사를 나눌 만큼 강아지 무리 속에서 사회성도 좋은 편이다. 낯선 고양이가 와서 잠을 자고 가도 처음에만 호기심을 보일 뿐 크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착하고 얌전한 매너견이었는데.


첫 번째 임시 보호 때는 자신의 간식을 나눠주고 배변 실수를 하면 내게 와 알려줄 만큼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후 임시보호 때는 스트레스를 받고 질투를 참지 못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다행히 물거나 해코지하는 일은 없었지만 자신보다 작은 강아지를 소파 아래로 몰아 꼼짝 못 하게 누르고, 호기심에 집안을 돌아다닌 것도 용납 못 한다는 듯 앞을 막아섰다. 웬만하면 짖지 않는 흰둥이가 식구들이 강아지를 안아주거나 놀이라도 하면 크게 짖었다.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흰둥이에게 갑자기 나타난 낯선 강아지는 당황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 단지 순하니 분명 잘 지냈겠지 하는 나의 안일한 생각이 문제였다.



흰둥아~
흰둥~?
왜 불러도 가만히 있어?
너, 화났니?
누나가 자꾸 다른 강아지 데리고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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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아요.
동생들이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해서라는 걸
하지만 동생 강아지가
누나랑 형아랑, 엄마랑 아빠 품에 안기는 게 샘나요.
아무래도
나는 나쁜 강아지일까요?


흰둥이가 나빠서 혹은 샘이나 질투가 많은 강아지라서의 문제는 아니다.

"강아지가 올 거야"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흰둥이에게 그 어떤 배려도 하지 못했던 우리의 실수였다.

빨리 좋은 가족을 찾아 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조금만 더 살피고 준비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흰둥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임시 보호하는 강아지를 다시 보낼 수는 없었다.


흰둥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진 둘을 분리시키고 억지로 친해지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조금씩 스트레스가 사라진 흰둥이는 짖는 횟수가 적어졌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자유로워진 강아지도 눈치 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어린 강아지는 배변판을 사용하고 간식을 받아먹는 흰둥이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변훈련을 하고 있었다.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통해 학습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강아지가 오고 하루 이틀은 서로 으르렁거리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는데 지나고 보니 언제나 참고 이해하는 쪽은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들이었다. 시간에 쫓겨 빨리빨리 원만히 지내길 바랐던 마음이 욕심이었다. 조금씩 배려하고 기다려주면 될 것을.


다행히 두 번째 임시 보호하던 강아지는 열흘 만에 새 주인을 만나 우리 집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