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두렵지 않도록...

2006년 봄

by 모레


언제까지 집에서만 지낼 수는 없었다.

손이 아닌 더한 곳을 물리더라도 흰둥이를 소파에서 꺼내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교통사고 이후 바깥 활동을 싫어하는 흰둥이를 위해 사람의 왕래가 적고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처럼 바퀴가 달린 물체가 없는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산이었다.



이른 봄, 아직은 계곡 사이 흐르는 물이 차갑고 키 작은 초록의 풀잎들이 산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던 때였다. 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숨을 헉헉대며 불안해하는 흰둥이를 나는 계속 안고 있었다.


입구에 도착하고서야 내내 품에 안고 있던 흰둥이를 내려놓고 사람이 많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흰둥이도 나를 따라 천천히 땅을 밟으며 산길을 걸었다. 중간중간 흙냄새도 맡고 나무 기둥 사이를 둘러보기도 하면서 흰둥이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흰둥이는 성큼성큼 바위에 올라가고 작은 웅덩이를 발견하면 발을 담그며 잠시 쉬기도 하며 산에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를 앞질러 먼저 길을 오르고 있는 흰둥이를 볼 수 있었다.



걷다 수풀에서 소리가 나면 뚫어지라 바라봤고, 나무 위 새들이 노래를 부르면 고개를 들어 한참 동안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의 목적은 등산이 아니었기에 빨리 갈 필요도 꼭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보고 내려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렇게 빨리 또 많이 좋아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찾아오는 건데 그동안 억지로 싫어하는 곳으로만 다녔던 게 미안해졌다. 이날 우리는 정상을 오르진 않았다. 첫 산행이었고 흰둥이가 다리를 다친 후 가장 오랫동안 걸었던 날이라 혹시 무리가 될까 싶어 중간쯤 오르다 다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 간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도 쏠쏠 했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지 않았어도 등산 후 먹는 도시락은 꿀맛이다. 흰둥이도 허겁지겁 준비해 간 간식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돌아오는 차 안, 흰둥이는 출발했을 때와는 다르게 얌전히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코를 실룩거리며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이면 산으로 향했다. 덕분이었는지 흰둥이는 이후 산책하러 나가는 횟수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몇 달간은 나가기 전 소파로 도망가고 하네스를 채우려 하면 빠져나가는 등 조금의 저항은 있긴 했지만, 전처럼 손을 물면서까지 산책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봄이 아직 남아있고 여름이 오기 직전인 어느 날 우리는 홀연히 바다로 향했다.


나는 이런 상상을 했었다.

파도가 하얀 포말을 그리며 철썩철썩 노래하는 바다를 배경으로 새하얀 털을 휘날리며 반짝이는 해변 위를 달리는 흰둥이를.


그런데 흰둥이는 바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울퉁불퉁하고 오르기 힘든 산은 껑충껑충 잘도 노닐며 좋아하던 녀석이 바닷가 모래 위에서는 얼음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저만치 떨어져서 "흰둥아 이리와~" 하고 불러보지만, 녀석은 요지부동이었다.


우리는 매년 바다를 찾지만, 여전히 흰둥이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지나서 느낀 건데 흰둥이는 푹푹- 꺼지는 모래 위가 싫었던 거였다. 하긴 사람도 모래사장을 걸을 때면 발이 푹푹 빠져 걷기 힘든데, 풀이나 나무를 좋아하는 흰둥이에게 끝없이 펼쳐진 해변은 체육 시간 학교 운동장을 뛰던 그때의 나와 별다를 것 없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도 모처럼 찾아간 바다니 기념사진은 찍어야지 않겠어?

나름 멋져 보이는 바위 위에 흰둥이를 올려보았지만, 흰둥이는 특유의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흰둥이와의 바닷가 산책을 꿈꾸던 나로서는 그냥 가기가 아쉬워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가 보라고 끌어보았지만, 흰둥이는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산이나 계곡에 가면 스스로 물에 들어가고 했던 흰둥이는 백사장을 걷는 것만큼이나 바닷물에는 닿는 것도 싫어한다. 어마어마한 파도의 크기와 웅장한 소리에 겁이라도 먹었는지 엉덩이를 잡아 빼고 줄행랑치기 일쑤다.



등산하면서 겨우 산책 공포에서 벗어났는데, 사진속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흰둥이를 보니 싫어하는 녀석을 너무 끌어당겼던 건 아니었는지 미안한 마음이 드든다.

다행이 산책을 거부할 만큼 바다는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다. 단지 그냥, 좋아지지 않는 곳일 뿐이다.


이리와 봐~ 바닷물에 발 좀 담가봐!
흰둥아, 조금만 더~ 와봐! 자, 이리로~~



싫어, 싫어.
난 바다가 싫어!!
우리 산에 가자, 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