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봄이 되면 말이죠.
매일 똑같은 산책길도
그날그날 다르게 느껴져요.
현관문을 나서기도 전에
마음은 콩닥콩닥 설레기 시작해요.
그런데요,
이런 설렘을 방해하는 무리가 있대요.
흰둥이 준비됐어?
그럼 나가볼까.
네, 전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이~ 불청객, 딱 기다려!
예전엔 봄의 불청객 하면 황사가 대표적이었는데 최근엔 미세먼지, 그것도 초미세먼지라 불리는 강력한 불청객이 나타났다. 황사는 뿌연 하늘에 매캐한 공기까지 딱 봐도 알 수 있지만, 초미세먼지는 사람 눈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맑은 날에도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얼마든지 내려질 수 있다고.
대체 먼지는
누가 만들어대는 거야!
2013년 세계 보건기구 WHO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의 1% 밖에 안 되는 미세먼지와 그 크기의 1/4인 초미세먼지는 코나 기관지 등으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몸에 쌓이게 된다. 매우 작은 입자의 초미세먼지는 폐를 통해 혈관에 침투하고 몸의 각 장기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뇌까지 침투해 뇌졸중의 발병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효된 날, 한 시간 동안의 산책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찬 밀폐된 공간에서 1시간 24분 동안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길을 걷다 누군가 피워대는 담배 연기만 맡아도 숨 쉬기가 곤란한데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산책이 흡연 구역을 서성이던 꼴이나 마찬가지였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하루 중 산책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흰둥이를 보면서 나는 고민한다.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미세먼지가 동물에게도 같을 텐데 오히려 멍냥이에게 더 치명적일지 모른다.
사람이야 마스크를 쓰지만 강아지는 미세먼지가 뭔지 모르니 입을 벌리고 혀를 쭉 내밀어 늘 그렇게 세상의 냄새를 다 맡고 다니니.
초미세먼지는 실외뿐 아니라 실내에도 어렵지 않게 침입한다.
평소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는 털에 붙은 초미세먼지를 그대로 섭취할 수 있어 산책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개의 경우 두상의 모양에 따라 주둥이가 긴 장두 개종과 퍼그처럼 짧은 단두 개종이 있는데 평소 이들은 비강 종양의 위험과 폐암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고.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입을 벌리고 온 세상의 냄새를 호흡하는 개들에게 미세먼지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해맑게 웃으며 신이 난 흰둥이에게 PM10, PM2.5 하는 것들은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는 얘기지.
초미세먼지만큼이나 반려견들에게 반갑지 않은 것이 바로 진드기다.
모처럼 맑은 하늘, 햇볕도 따뜻하고 살랑살랑 봄바람에 산책하기 딱 좋은 날에도 나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날이 따뜻해지면 풀숲에 숨어 있던 진드기는 지나가던 온혈동물에 달라붙어 피부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먹는다. 진드기에 물린 동물은 가려움증과 피부 발진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구토 증세를 보인다. 진드기 독소로 인한 신경 증상과 마비나 라임병, 바베시아, 얼리키아증의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살인진드기다.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증후군(SFTS)이라는 이름도 길고 어려운 진드기 감염증은 종종 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피해가 늘고 있다. 흰둥이의 몸에 이런 살인 진드기가 기어 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내 몸이 다 간지럽다.
어쭈,
계속 따라오겠다.
진득이 너,
나 프론*라* 바른 강아지야.
다 죽었어.
진드기 같은 외부기생충은 동물병원이나 동물약국등에서 외부구충제를 구입해 발라주면 된다.
한 달에 한번 꼭 잊지 말기!
미세먼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애꿎은 고등어를 주범으로 몰아가던 지난 일을 보면 이 문제에 있어서 아직은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는 듯하다.
산책 후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는 것과 털에 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주고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은 일회용 인공눈물로 눈을 씻어주는 것 외엔 내가 해줄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어쩌면 초미세먼지가 너무 심한 날엔 산책을 건너뛰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부득이하게 나가야 한다면 5분~10분 이내로 제한하자.
집안도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할 수 없으니 24시간 공기청정기를 가동 중이다.
청소 후엔 물걸레로 아직 집안에 남아 있는 먼지를 한번 더 닦아낸다
하지만 오매불망 산책을 원하는 흰둥이에게 나 갈 수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난감하다.
그런 날에는 집안에서라도 재미있게 놀아 주어야겠지.
놀다 지쳐 뻗어 버릴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