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 장염 극복기

2005년 6월

by 모레

흰둥이 얼굴이 이상했다. 마치 벌통에서 꿀을 훔쳐 먹고 꿀벌에게 응징을 당한 것처럼 퉁퉁 부어있었다. 5차 예방접종을 하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태가 이상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아나필락시스 증상이라는 급성 과민반응, 즉 백신 접종 부작용이라고 했다. 심한 경우 호흡곤란이 와 위험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외엔 별다른 증상은 없었다.


그 후 예방 접종을 할 때마다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한편으론 걱정이 되지만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 더 큰 질병에 노출될 수 있어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 강아지들은 꼭 필요한 접종을 해야 한다. 만약 항체가 생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질병에 노출되면 강아지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되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던 흰둥이가 어느 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강아지들은 컨디션이나 먹는 음식에 따라 묽은 변을 볼 수 있는데 한 번 시작된 흰둥이의 설사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5차 접종후 나타난 부작용으로 인해 응급처치를 받은 후 또 다시 병원을 찾게 됐다. 일단 상태를 보자며 약을 처방받아 돌아왔지만 이틀 후 다시 내원을 했다. 그 무렵 흰둥이는 핏빛 혈변 증상을 동반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파보장염이었다. 백신을 맞았는데도 항체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백신 전 이미 잠복기에 있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한 달 넘도록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이 약이 들지 않으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최후통첩처럼 수의사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셨다. 섭섭하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정작 이 상황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에 마음이 찢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었다. 설사하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흰둥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걸 좋아했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흰둥이 웃는 얼굴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


바람 앞에서 촛불을 지키듯 밤마다 흰둥이 곁을 지켰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중 하나였다. 그리고는 누워 잠든 흰둥이를 보며 금방 떠날 거면 왜 이렇게 예쁜 짓만 했냐며 속상한 마음에 짜증도 냈었다


난 너한테 줄 사랑이 아직 많아.

이렇게 예쁜 짓만 주고 갈 거면 너는 너무 나쁜 강아지야!

너도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잖아

그 사랑 다 받기 전에는 절대로 내 옆에서 떨어지면 안 돼!

안 그럼 너는 진짜 진짜 나쁜 강아지야!

넌 똑똑하고 착한 강아지니까 내 말 잘 들을 거지?

그렇지 흰둥아?


훌쩍이며 내 사랑 다 받기 전에 가면 안 된다고, 내가 됐다고 하기 전에 가버리면 미워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잠든 흰둥이 곁을 지키며 울다가 잠드는 날들이 지나갔다.


다행히도 병원에서 타 온 마지막 약을 다 먹기도 전에 흰둥이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혈변이 사라지고 설사도 잦아들었다. 기적처럼 작고 어린 흰둥이가 그 병을 이겨낸 것이다.


가끔 지금도 흰둥이가 설사나 묽은 변을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 똥강아지 주제에 장은 또 왜 그렇게 예민한 건지, 아니면 내 사랑이 마르지 않게 그렇게 각인시켜 주는 건지. 간간이 조끔씩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12년 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내 사랑이 마르려면 앞으로도 년은 넘게 남았으니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었다고 관절이 조금 말썽이다. 그래도 약이나 영양제를 주면 넙죽넙죽 잘 받아먹어 줘서 기특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