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흰둥이가 오던 그 해를 되돌아보며
연습하는 듯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지만, 아직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이를테면 공중부양을 할지도 모른다는- 뭐 그런 허무맹랑한 특별함이 숨어 있을지도.
여하튼 흰둥이는 좀 특별하다. 분명 개인데, 개 같지가 않다. (어감이 참 이상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왜 내 눈에 흰둥이가 강아지로 안 보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 분명 꼬리가 달렸고, 네발로 걸어 다니고, 멍멍~ 짖을 뿐 말도 못 하는데 왜 흰둥이가 강아지로 안 보이는 건지 이상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흰둥이가 개로 보여? 강아지로 보이냐고?
야~(동생에게) 너는 흰둥이가 강아지로 보이냐?
아니, 내 말은 흰둥이는 강아지지만 그게, 뭐랄까. 여긴 다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살지만 우리 집은 좀 뭔가 다른 그런 느낌 있잖아. 그런 거 말이다. 설명하긴 어려운데, 분명 내게 흰둥이는 강아지로 안 보이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브런치는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흰둥이가 1살이 되기 전 우리 집 식구가 되었던 그해의 모습들.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 않지만, 아기라서 그런지 솜털이 보송보송한 모습이 참 예쁘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이름도 없이 그저 멍멍아~로 불렸었는데, 그러다 흰둥이란 자기 이름을 뽑아 이름이 생겼다. 그렇게 잘 지내나 했던 어느 날 파보장염에 걸려 생사를 오갔고, 겨우 살아나서는 교통사고 당했다.
깁스를 한 다리로 게를 잡겠다고 온 집안을 뛰어다녔던 일도 있었다.
아빠가 갯벌 체험으로 잡아 온 게 들이 밤사이 몽땅 탈출해 온 집 안 구석구석에 숨어 버린 것이다. 그 게 들을 모두 흰둥이가 찾아냈다. 그때 흰둥이는 마치 공항의 마약 수색견처럼 흩어진 게를 찾았다. 아픈 다리를 하고도 어찌나 잘 찾았던지, 흰둥이가 쿡쿡거리면 여지없이 그 속에 게가 숨어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흰둥이는 발 냄새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내 발도 막 물어뜯고 가끔 신발도 뜯어 놨는데 나중에 보니 흰둥이의 이갈이가 시작된 거였다. 미리 개껌을 준비해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내 발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첫 유치가 빠졌다. 그날도 여전히 장난 중이었던 흰둥이 입에서 아빠가 피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온 가족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뻔했다. 다행히 유치는 모두 잘 빠졌고 영구치도 모두 가지런히 나왔다.
얼마 전 건강 검진에서는 나이에 비해 치아가 깨끗하다며 스케일링도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다. 매일 밤 치카치카를 해야 잠을 자는 흰둥이라고 자랑하며 나는 뿌듯해했다.
지금은 없는 그 소파, 몇 년 동안은 흰둥이 아지트였는데...
물고 뜯고, 말 듣기 싫을 때는 아래로 쏙 들어가 나오지도 않았다. 몸이 자라면서 소파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게 되었지만, 소파를 바꾸면서 우리 가족이 고려했던 첫 번째 사항은 흰둥이가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높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예전 것보다 높은 지금의 원목 소파는 흰둥이에게 최적의 아지트가 되었다.
분명 자기 자리에 누워 잠들 걸 확인했는데 새벽에 낑낑거리는 소리에 깨 보면 흰둥이는 침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어떻게 올라오긴 했는데 내려가는 게 무서워 울고 있었던 거다. 아무리 침대에 올라오지 못하게 해도 내가 잠든 사이 올라와 잠을 잤다. 지금은 뭐 내가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먼저 내 침대 위에서 잠들곤 한다.
사람들은 그런 흰둥이가 침대 이불 위에 실수하면 어떡하냐 묻지만 괜찮다. 처음 집에 올 때부터 흰둥이는 이불 위를 좋아했다. 폭신폭신한 걸 좋아하는 흰둥이는 12년 동안 이불이나 카펫에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에 잠을 자고 있어도 깨울 수가 없다.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가끔 나도 꼬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흰둥이가 한없이 꼬리를 흔들며 가족들을 반길 때, 간식을 보고 좋아할 때, 산책하러 가자 소리에 들떠서 빨리 가자 조를 때, 어떨 땐 그냥 '흰둥아~' 하고 불렀을 뿐인데도 한없이 좋아서 힘차게 꼬리를 흔든다. 얼마나 좋으면 꼬리를 흔들다 못해 엉덩이까지 들썩들썩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말이라는 건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숨기거나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흰둥이의 꼬리는 예외가 없다. 좋으면 흔들고, 더 좋으면 엉덩이도 같이 흔들어댄다. 무섭거나 겁이 나면 애써 강한 척하지 않고 꼬리를 다리 아래로 숨겨버린다.
나도 저렇게 '좋아요', '싫어요'라는 말 대신, 거짓 없이 순수하게 힘 있게 마음을 다해서 흔들 수 있는 꼬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흰둥이의 특별함은 무엇이었지? 개로 안 보이는 그 특별함 말이다.
보자, 보자, 보자... 사진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그냥 기분이 좋다.
특별함을 찾아야 해! 정신을 차려보지만, 다시 정신이 몽롱해지고 막 좋아진다.
나는 분명 왜 흰둥이는 개로 보이지 않을까? 란 의문에서 출발했는데 궁금증은 여전하지만 생각하기 싫어졌다.
사진을 보아도 옆에 누워 정신없이 잠을 자는 흰둥이 얼굴을 보아도 기분이 막 좋아진다.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 힘든 일이 있을 때, 흰둥이 얼굴을 바라본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그게 특별함일까?
사람들은 종종 그런다. 나이가 많아서 걱정이겠다고 이제 만 11살인데.
얼마 전 동네 초등학생들이 강아지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기에 '만 11살이 넘었는데'라고 했더니 '그럼 15살 되면 죽겠네'라는 당돌함에 나는 나이를 잊고 초등학생들에게 결투를 신청할 뻔했다.
나이가 많다고 금방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봄에 한 건강검진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나이보다 건강하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관절염 때문에 관절 영양제를 먹고는 있지만, 여전히 흰둥이는 발랄하게 까불고 유쾌하게 애교쟁이다.
남들 시선에 나이 든 개로 보일지언정 내 눈엔 언제나 3살 아기일 뿐이다.
흰둥이가 오던 그해, 지난 1년을 쭉- 정리해 봤다.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혼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가끔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한참이나 생각의 퍼즐을 맞춘다.
어릴 적 사진이 많지 않아서 조금은 아쉽지만 오랜만에 10여 년 전 흰둥이 사진을 꺼내 보면서 행복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 글을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모든 동화 속 이야기처럼 나와 흰둥이 이야기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