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어쩜 이렇게 말썽을 안 부리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배변도 알아서 척척, 엄마가 아끼시는 화분도 하나 안 건드렸다. 화분 위에 올려진 돌멩이가 궁금해 냄새를 맡는 게 전부였다. 개들이 좋아한다는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벗어 둔 양말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카펫이나 이불에 실수하는 일도, 종이 하나 찢는 일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집에서 태어난 것처럼 빠르게 적응하는 흰둥이가 기특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땐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 남을 때면, 간식은 물론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데 물도 마시지 않고 가족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른바 분리 불안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울거나 짖거나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만이 분리 불안이 아니다. 구석에 숨고, 무기력한 행동, 혹은 흰둥이처럼 혼자 남겨졌을 때 어떤 것도 입에 대지 못하는 것 역시 분리 불안의 신호였다
계절이 여름으로 향하고 있어 그냥 둘 수만은 없었다.
책과 검색을 통해 분리 불안 행동을 고칠 수 있다는 '기다려' 훈련법을 찾아냈다.
현관에서 "기다려!"라고 말한 뒤 "금방 돌아올게" 하고 안심시킨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가 5초 이내 돌아와 기다리는 흰둥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시간을 길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돌아왔을 때 흥분해 반기는 강아지를 무리해서 만지거나 흥분해 반기는 행동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저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여유 있게 행동해야 했다.
훈련은 성공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났다.
내가 화장실에 가면 흰둥이는 울기 시작했다. 집에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낑낑거리는 또 다른 유형의 분리 불안이었다. 하도 울어서 어쩔 땐 문을 열고 볼일을 봐야 할 정도였고, 식구들이 있을 땐 그도 쉽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흰둥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다. 처음엔 좋아서 따라오던 흰둥이가 스스로 지쳤는지 순간 화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거나 울지 않았다.
딱히 훈련한 것도 아닌데 화장실 앞 낑낑거림이 해결된 것이다. 흰둥이 혼자 좋아진 걸 보면 강아지도 시간을 갖고 믿고 기다려주면 스스로 나쁜 행동을 고치기도 하는 것 같다.
곧잘 거실 슬리퍼를 물어뜯던 건 이갈이가 끝나면서 사라졌다.
누워 있는 엄마 배를 앞발로, 마치 땅을 파는 것처럼 장난치던 행동도 어느 순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전동 마사지 같고 좋았다며 아쉬워하신다. 흰둥이도 그 방법으로는 절대 엄마의 뱃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걸 터득해 멈춘 건 아닐까?
차 탈 때마다 무서워 아빠 옷 속에 파고들어 겨드랑이를 지나 소매에 들어가던 행동은 몸집이 커지면서 없어졌다. 지금은 오히려 차를 타고 콧바람 쐬는 걸 즐긴다. 운전석에 있는 아빠의 소매 속으로 들어가 처음엔 얼마나 당황을 했던지 그 뒤로 흰둥인 절대 앞 좌석에 태우지 않는다.
가방에서 몰래 훔쳐간 것으로 추정되는 껌 종이와 사탕 껍질이 흰둥이 집에서 가끔 발견되었는제 가방에 주전부리를 넣지 않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이 됐다.
초인종이 울리면 현관 옆 기둥에 마킹을 하는 버릇은 꽤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배변 패드를 깔아 둘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일 년이 지나니 배변 패드도 치울 수 있었다. 이 역시 훈련의 결과라고 하기엔 내가 가르쳐 준 게 별로 없다. 초인종이 울려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마킹하는 일이 사라진 것이다.
훈련으로 좋아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발톱 깎는 것도 여전히 싫어하고, 택배 상자는 물어뜯어야 제맛이라며 그냥 놔두지 못한다. 자기 집보다는 내 침대 위에서 자는 걸 더 좋아하고, 냉장고 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빛의 속도로 달려와 간절한 눈빛을 쏘아댄다.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 좋아지지 않았다. 그냥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져서 이해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있다. 여전히 식구들이 나갈 때면 애처로운 눈망울을 하지만 예전처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샤워 후 나와 보면 욕실 문 앞에서 흰둥이가 기다리고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더는 그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은 유난히 나를 기다리네!' 하며 지나간다. 분명 흰둥이도 그럴 것이다.
때론 그 어떤 훈련보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좋아진다는 걸 나는 흰둥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 기다려주기 힘들 만큼 큰 말썽 없이 자라 준 흰둥이라서 얼마나 고맙고 예쁜지.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야기하면 흰둥이는 그저 말없이 내 얼굴을 핥는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 애처로운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그럼 누나,
냠냠이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