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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욱 Nov 05. 2018

광고 같은 뉴스 만들기-1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주제와 씨름하는 분들을 위해


안녕하세요. 

저는 닷페이스라는 곳에서 영상을 만들고 있는 이선욱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MBC 뉴미디어국에서 불러주셔서 주제넘게도 강연을 하고 왔습니다. 덕분에 지난 2년여간 해온 작업들에 대해 스스로 처음 정리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정리한 김에 혹시나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조심스럽게 글로 남겨봅니다.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주제와 씨름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어봤습니다.


저는 2016년 5월 닷페이스에 합류해 2년 반 정도 영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가장 많이 한 작업이 시사적 내용을 시각적으로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그거앎?>이라는 설명, 해설 시리즈입니다.


<그거앎?> 시리즈


<그거앎?>은 평균 20만 회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 나온 <슬라임으로 헌법을 이해해보자>라는 영상은 현재 페이스북 기준 약 260만 회의 조회수가 나왔습니다. 전체 미디어 시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시리즈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가장 딱딱한 주제를 다루면서 이 정도 대중성을 확보한 것에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디폴트 : 이런 걸 누가 보겠어


'나도 보기 싫은 주제를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설명할까?' <그거앎?> 시리즈의 주된 목표였습니다. 


이런 류는 국내 뉴미디어 안에서 다소 마이너한 영역입니다. 힙하거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빵빵 터뜨리는 콘텐츠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밀레니얼을 화두로 하는 뉴미디어의 주된 접근방식과는 결이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밀레니얼이 외면하기 때문에 더더욱 매달려야 하는 영역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 제도, 현상 이면의 복잡한 이유 등 어렵고 피곤하지만 중요한 것들 말입니다.  <그거앎?>시리즈는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뉴미디어의 흐름에서 <그거앎?> 역시 매우 초기 단계의 어디쯤 와있다고 생각합니다. 갈 길이 여전히 멉니다.  다만,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기록하는 일은 앞으로 더 좋은 포맷이 나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시작해보겠습니다.


광고 같은 뉴스 만들기


광고처럼 만들자. 처음엔 막연했으나 갈수록 명확해진 저만의 목표였습니다. 연출을 위해 다른 어떤 영역보다 광고 쪽 영상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그거앎?> 시리즈가 온갖 노잼 주제를 다루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앎?> 초기에 때깔 좋은 스톱모션을 위해 참고한 광고 https://vimeo.com/251167399


광고를 배운 첫 번째 이유 : VOX, VICE를 보는 미디어들을 이기기 위해서


출발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어떻게든 튀고 싶어서였습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NYT와 BBC에서 배우듯, 비디오 저널리즘을 하는 뉴미디어가 VICE나 VOX에서 배우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가장 잘하니까요. 저 역시 쭈욱 공부하듯 이런 해외 미디어를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들도 다 이런 걸 본다는 점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뻔한 얘기겠지만 다르게 만들려면 다른 걸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보면 크리에이티브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보다 보니 광고를 봐야 할 이유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처음엔 VOX, VICE를 열심히 보는 곳들을 이기기 위해 광고를 봤다면, 이후엔 그것들과 전혀 상관없는 곳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광고처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경쟁자가 저널리즘을 하는 뉴미디어뿐인가?


저널리즘과 전혀 상관없는 곳들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경쟁자가 당연히 국내 뉴미디어 영상 업계에 있는 곳들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시간이 갈수록 그들만이 경쟁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엔 뉴스 탭이 없습니다. 신문이나 TV, 네이버에서 뉴스를 소비할 때처럼 이 매체, 이 시간, 이 공간에선 오직 ‘뉴스만’ 본다는 보호막 같은 것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피드에 뒤죽박죽 섞여 나오는 온갖 것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런 걸 저널리즘이 어떻게 이깁니까


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주말 오전이면 시체처럼 누워 유튜브 피드를 수도 없이 오르내립니다. 귀여운 고양이, 썸네일부터 웃긴 웹 예능, 좋은 노래, 스포츠 하이라이트 같은 것들이 나옵니다.  


슬프게도 저는 여기에서 닷페이스 같은 콘텐츠를 봐야 할 이유를 못 느낍니다. 심지어 제가 만든 영상을 확인하러 유튜브를 켰다가 고양이 영상에 정신이 팔려 뭘 하러 들어왔는지 까먹고 핸드폰을 꺼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자극의 홍수 속에서 선택을 받으려면


피드에 뜨는 영상들은 다들 어떤 식으로든 자극적입니다. 호기심, 경쟁심, 분노, 슬픔, 기쁨 등 수많은 감정을 자극합니다. 이런 자극 때문에 눌러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반면 저널리즘은 대개 재미가 없습니다. 간혹 자극으로 사람들을 끄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 경우 최근 가장 유심히 본 영상이 '거제 폭행 살해사건 CCTV 영상’입니다. 자극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지만, 그렇다고 제 인생과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나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내용이 워낙 어마어마해서 그 자체로 엄청난 뉴스들도 있습니다.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안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보도가 매일 나올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기 위해 SNS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극이 없는 일상 뉴스들은 오랜 기간 외면을 받아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유튜브나 페이스북 공간에선 그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처음엔 왜 이 중요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외면하는지가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실패를 거치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러 SNS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광고를 배운 두 번째 이유 : VOX, VICE와 1도 관련 없는 미디어들에 어떻게든 비벼보려고


SNS에서 제가 만드는 영상의 포지션을 명확히 하자 광고를 참고해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해졌습니다. 자극적인 콘텐츠들보다 더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야 어떻게든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이 똑같은 방식으로 자극적일 수는 없습니다. 만들어낼 수 있는 자극의 종류가 다릅니다. 일부 콘텐츠처럼 선정적이거나 말초적인 방식으로 자극적일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낼뿐이죠.


그러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자극적일 것이냐? 광고가 만들어내는 엄청나게 다양한 자극이 제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널리즘에서 볼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자극 방식이, 무엇보다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화면을 만드는 방식이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 광고제


처음엔 칸 광고제를 비롯해 유명한 국제 광고제 수상작들을 봤습니다. 그러다 맘에 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나오면 그들의 홈페이지나 비메오 페이지에 들어가 그들의 작업물들을 쭉 봤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 자체가 흥미로워 이들과 관련된 책도 봤습니다. 그러다 제가 광고에서 배워야 할 가장 명확한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광고를 배운 세 번째 이유 : 광고는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전했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저는 뼈를 때리는 구절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광고를 보려고 TV 앞에 앉아 기다리지 않는다. 또한 markerter나 planner들이 규정해놓은 대로 생각하고 반응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이동수, <아시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과의 대화>, 소화, 2009, p.144


사람들은 광고를 보려고 TV 앞에 앉아 기다리지 않는다


이 문장으로 저는 광고가 현재처럼 고도화된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TV를 켜는 목적이 당연히 광고가 아니라는 전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당연히 채널이 돌아갈 것이라는 전제가 지금의 광고를 발전하게 한 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식의 측면에서 저널리즘 영상과 광고 영상은 차이가 매우 큽니다. 성격이나 분량의 차이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광고가 연출이나 스토리텔링, 때깔 등에서 저널리즘 쪽 영상보다 훨씬 더 다양한 무기들을 갖고 있음을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잘 만든 광고는 단 몇 초 안에 보는 이의 눈을 잡아챕니다. 그리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짧게 끝나고 마는데도 커다란 잔상을 남깁니다. 기쁨, 슬픔, 감동, 충격 등의 자극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냅니다. 보는 이들은 이 광고가 물건을 팔고 있다는 뻔한 속내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자극에 매번 당하고 맙니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러 SNS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광고를 보러 TV를 켜지 않는다. 


저는 이런 것들이 광고가 TV에서 차지하는 취약한 위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개발해낸 방법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만드는 재미없는 지식, 정보 콘텐츠가 이 광고라는 조상에게 배울 게 아주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TV에서 광고가 차지한 위치와 유튜브 피드에서 제가 만드는 콘텐츠가 차지한 위치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뉴스를 광고처럼 만들기로 마음먹은 이유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어놓은 감이 있네요. 


다음 글에서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광고를 따라 하려고 했는지, 어떤 점이 잘 먹혔는지, 제가 시도했던 방법들을 위주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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