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욱 Nov 14. 2018

광고 같은 뉴스 만들기-2

자극을 가지고 노는 뉴스를 만들려면

안녕하세요.


지난 글에선 어쩌다 광고를 참고해 뉴스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적어봤습니다.
https://brunch.co.kr/@mo0l/2


이번 글에선 광고에서 쓰이는 어떤 방법들이 시각적인 뉴스 전달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제가 시도한 것들 위주로 적어보겠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제가 주로 만들어온 해설형 영상에 초점을 맞추어 작성했습니다. 다른 영역은 잘 몰라서 함부로 뭐라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편집을 직접 하시는 실무자 분들을 타깃으로 작성했습니다.


자극을 가지고 노는 뉴스 만들기


제가 생각하는 광고 같은 뉴스란 한 마디로 자극을 가지고 노는 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고가 그렇듯 자극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면 몰입도를 확실히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자극이 없는 뉴스, 그동안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던 뉴스일수록 이런 방법이 꽤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1. 선명한 하나의 이미지


다른 건 다 까먹어도 좋으니 중요한 한 문장만 기억에 남긴다고 생각하고 만들자


한 뉴미디어 스타트업의 대표 조소x님이 늘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퍼 나르고 싶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한 마디라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이미지만 머릿속에 남긴다고 생각하고 만들자

콘텐츠의 핵심은 당연히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글이 아닌 영상을 표현 수단으로 삼은 이상 메시지와 더불어 영상 자체로 임팩트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사람들이 영상을 보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왜 글이 아닌 영상일까?


영상은 비효율적입니다


정보만이 목적이라면 영상은 필요가 없을 겁니다. 영상은 비효율적입니다. 영상작업은 시간도, 돈도, 노력도 많이 듭니다. 보는 사람에게도 비효율적입니다. 영상을 볼 땐 글을 읽을 때처럼 보는 속도를 조절할 수도 없습니다. 보고 싶은 부분만 보기에도 불편합니다. 영상은 데이터와 시간도 더 많이 뺏어가죠. 저도 정보를 얻을 땐 영상보다 글이 훨씬 편하다고 느낍니다.


반면 영상이 글에 비해 갖는 큰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글에 비해 훨씬 쉽고 빠르게 자극을 준다는 점입니다. 줄 수 있는 자극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영상이 더 빠르고 즉각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점은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글로는 흥미를 끌기 어려운 소재도 시각적 자극으로 재밌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상을 만들 때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 하나는 어떻게든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이 정말 재미가 없는데도 내용만으로 재밌게 봐주실 분이라면, 같은 내용을 책이나 논문으로 써도 재밌게 봐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은 제가 생각하는 영상의 타깃은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영상을 보는 재미가 아니라면 접근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주된 타깃입니다.


광고를 살리는 영혼의 한방  


불멸의 짤을 만든 제산제 광고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시각을 지배해야 하는 광고가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시각적 한방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 적절한 예 중 하나가 바로 이 개비xx 광고입니다. '이 약이 속 쓰림을 말끔하게 해소해준다'는 핵심 메시지를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키치하고 재밌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런 불멸의 짤까지 길이 남는다면, 엄청난 성공 아닐까요?


저는 개비xx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이 광고를 살린 한방이 바로 속 쓰림과 해소를 과장해 시각화한 이 짤이라 생각합니다. 광고에서 가장 많이 참고한 것이 바로 이런 선명한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들입니다. 선명한 이미지가 있거나, 억지로라도 만들어낸 영상은 결과가 좋았고 그렇지 않은 영상은 대체로 망했습니다.


영상에서 냄새가 나요


내 신발...

이 영상은 그런 실험을 했던 영상입니다. 은행나무가 왜 이렇게 많은가를 설명하면서 강력한 시각적 임팩트를 주려고 했습니다. 구청에서 은행열매를 미리 터는 걸 보고 궁금해져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개발시대에 한두 종류의 가로수만 죽어라 심다가 피본 역사를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스토리만으론 재밌는 영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서있는 나무만 죽어라 훑어 보여주다가 흑백으로 된 옛날 자료화면 몇 개 들어가는 뻔한 영상만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바로 위에서 예로 든 개비xx 광고 같은 시각화입니다. 사람들이 은행나무에 불만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은행 냄새 때문이니 영상 안에서 어떻게든 그 부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냄새를 연상시키는 시퀀스를 만들어 영상이 지루해질 것 같은 순간마다 써먹었습니다. 결과는 매우 좋았습니다.


은행 영상에 달린 베댓


조회수도 만족스럽게 나왔고 평균 시청 지속률이 약 60%로 매우 높았습니다. 무엇보다 댓글 반응이 뿌듯했습니다. '영상에서 냄새가 난다'는 식의 댓글이 가장 많았기 때문입니다. 의도한 반응이 그대로 나왔고 그게 조회수로 이어졌습니다. 그간 제게 상처만 남겼던 도시 관련된 주제들도(고비용 저따봉ㅠ) 이런 시각적 자극을 잘만 활용하면 어떻게든 보고 싶게 만들 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소재 자체가 시각적 임팩트를 갖고 있다면 그 점을 최대한 살리면 더없이 좋습니다. 소재가 영상으로 표현하기에 다소 밋밋하다면 주제에 부응할 강력한 짤 하나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시도를 해보시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 추상 : 요점만 간단히


두 번째로 꼽고 싶은 것은 내용을 적절히 날리고 퉁쳐서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복잡한 내용을 담은 영상일수록 화면은 추상화해서 보여주는 것이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해설 영상에서는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이 복잡한데 화면까지 똑같이 복잡하면 당연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상은 내용을 보조하는 수단입니다. 영상이 한두 단계 해석을 필요로 하게 되면 당연히 더 중요한 내용을 놓치게 됩니다.


말이 어려우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https://vimeo.com/33201195

<Glassboy>,  Roni Kleiner


제한속도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담은 공익광고입니다. 사람 몸을 유리로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부딪힐 때 속도에 따라 표현을 달리하는 방식이 매우 직관적이죠. 복잡한 설 없이도 과속을 경고하기엔 충분합니다. 저널리즘 콘텐츠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시각화 방식은 얼마든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객관적인 정보들을 풀어줄 때 말입니다.

TV에 맨날 나오는 더미


객관적인 정보를 '내 정보'로 만들


뉴스엔 수치가 넘쳐납니다. 금액, 기온, 강수량, 농도, 용량 등 온갖 수들이 나오죠. 이런 객관적인 정보들은 그러나 어떤 의미인지 체감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시간당 강수량 100ml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오는 건지,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하는 것과 1.5도 상승하는 게 어떻게 다른지, 뉴스만 봐선 우리가 아는 수준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해설 영상은 뉴스에 나오는 객관적인 사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감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추상화는 이렇게 객관적 사실과 우리의 감을 연결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죠. 내용은 객관적으로 풀되 영상은 우리가 아는 감으로 추상화해버리는 겁니다.


미세먼지를 액괴로


https://www.youtube.com/watch?v=anUgj9oTHfU

2년 전 만든 미세먼지 영상


약 2년 전에 만든 투박한 영상입니다. 미세먼지를 액괴에, 기준치를 컵에 빗대 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원래는 실험실에서 실험 비슷한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돈이 없었습니다. 사실적인 표현은 애초에 불가능하니, 그러면 정반대로 이 기준치가 관대하다는 걸 가장 간단하게 표현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낮은 기준치가 문제인 만큼 어떤 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넘쳐흐르는 모습을 영상의 포인트로 잡았습니다. 그러려면 한 번에 넘쳐버리는 액체류보다는 컵을 타고 더럽게 흘러내릴 수 있는 끈적한 무언가가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액괴와 컵으로 각각 미세먼지와 기준치를 표현했습니다.  


이 방법도 매우 효과가 좋았습니다. 영상은 페이스북 기준 약 80 만회라는 제법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공유도 많이 되고 각종 커뮤니티에 재가공된 글도 많이 나오는 등 이른바 '바이럴'도 잘 됐습니다. 나중에 갖다 붙인 거긴 하지만 저는 분명 이것이 추상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감하게 컵과 액괴로 퉁쳐버린 것이 기준치의 문제점을 직관적으로 납득시킨 힘이었다고 말입니다.


얼마 후 본 넷플릭스 다큐에서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 분이 비슷한 말씀을 해주시기에 저는 추상을 밀고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추상은, 요점을 전달하는 데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제외하는 거예요

   -크리스토프 니먼(Christophe Niemann), <Abstract> 1편 중

넷플릭스 <Abstract>. 시각 영역뿐 아니라 기획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좋은 시리즈입니다.



3. 정직한 인서트 <<<<< 일관된 컨셉


위의 내용과 다소 비슷하지만 따로 떼고 싶은 내용입니다. 하나의 일관된 컨셉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컨셉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것의 반대를 편의상 '정직한 인서트'라고 부르겠습니다. 정직한 인서트란, 내용에 원숭이가 나오면 원숭이를, 사과가 나오면 사과를 보여주는 식으로 딱 그 내용에 맞는 화면을 인서트로 쓰는 걸 말합니다.(라고 제가 정의했습니다ㅈㅅ)


비슷한 강도의 이미지가 나열되면 강렬한 시각적 몰입을 만들어내기가 어렵습니다. 각각의 이미지가 저마다의 잔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보는 동안 산만해지고 다 보고 나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하나의 뚜렷한 이미지를 잡기로 했다면, 영상에 쓰이는 다른 이미지들도 중심 이미지와 결이 맞도록 해야 이해하기 쉽고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않는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개비xx의 예를 또 들어보겠습니다. 이 광고에서 고통과 안식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두 짤 말고도 주목할 한 가지가 또 있습니다. 바로 몸 안에 들어간 개비 xx의 모습입니다. 한 인물의 상반된 두 상태를 연결하는 이미지로 개비xx은 소방대원으로 표현됐습니다. 속 쓰림은 불이기 때문에 그 불을 끄는 약은 소방대원으로 그린 겁니다.


속쓰림=불/ 속쓰림 해소 = 얼음(?) / 개비xx=소방대원

'위에 난 불을 소방관이 끈다'는 영상적 서사가 '이 약이 효과가 좋다'는 핵심 서사를 매우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광고가 설정한 세계에 몰입해서 영상을 보게 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용을 떠나 영상 자체로 재밌는 볼거리가 된 겁니다. 동시에 그것이 내용을 정말 충실히 보조한 겁니다.


잘 만든 광고는 하나의 일정한 톤, 설정 , 세계관을 깨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갑니다.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이는 드라마나 영화는 말할 것도 없죠. 시대극에서 왜 그렇게 의상과 미술에 많은 공을 들일까요? 디테일이 컨셉에서 조금이라도 튀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커피로 모든 걸 다해보자고 했던 실험


https://www.youtube.com/watch?v=2ve-JhMNFws&t=66s

닷페이스, <도시가 자꾸 물에 잠기는 이유>

이 영상은 도시에서 물이 빠지지 않는 불투수 면적이 증가하는 것의 위험을 지적한 영상입니다. 비가 와도 물이 빠지지 않아서 홍수가 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물이 빠지고 빠지지 않고를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커피 드리퍼를 떠올렸습니다.


커피 드리퍼를 떠올린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 부분은 커피와 관련된 사물들로 필요한 내용들을 표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커피라는 컨셉을 잡은 이상 영상 안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이 크게 그 컨셉 안에서 놀게 하고 싶었습니다. 머리를 짜내 여러 가지를 커피와 관련된 것들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전부 다 그렇진 못 했죠.


자료화면용 TV를 극복해야 합니다


마땅히 비유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부분은 포기했습니다. 뒷부분은 대충 TV를 가져다가 자료화면을 깔았습니다. 뒤로 갈수록 비유의 힘이 빠진 영상이죠. 그랬더니 타이트하게 컨셉을 유지하는 앞부분에 비해 뒷부분은 시청 지속시간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모니터 프레임을 놓고 그 위에 자료화면을 올리는 방식은 정말 많은 곳에서 쓰는 방법입니다. 그래서인지 경험상 이런 화면이 나왔을 땐 대체로 이탈률이 높았습니다. (사람들의 역치가 올라가는 만큼 이제는 새로운 방식의 인서트 넣기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좋은 해설 영상을 만들고 싶으시다면 하나의 강력한 컨셉을 잡고 밀고 나가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끝까지 몰입을 유지하기에도 좋고 처음부터 시선을 확 잡아끌기에도 좋습니다. 비슷한 썸네일이 반복되는 유튜브 피드에서 독특한 컨셉의 영상은 썸네일부터 확 튀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아래에는 딱히 광고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저 역시 많이 배우고 개발하고 있는 일종의 잔재주 같은 것들입니다.



1. 컷 연결, 내용과 상관없이 형식만으로 몰입시키기


서로 다른 컷을 연결할 때 조금만 신경을 쓰면 더 몰입감 높은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뉴미디어 영상을 볼 때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서로 다른 화면을 이어 붙이는 방식이 다소 투박하다고 할까요? 역사가 짧은 만큼 아직 적절한 컷 연결 방법이 개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 예능, 광고 등에선 서로 다른 화면을 연결하는 나름의 노하우들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음악 리듬에 맞춘다든지, 이전 화면에서 시선이 향한 곳에 바로 다음 화면의 중요한 대상을 배치한다든지, 사물 하나를 고정하고 나머지를 바꿔 마치 그 사물을 제외한 배경이 저절로 바뀐 것처럼 한다든지 하는 방식들입니다. 매치컷이라고 하는 온갖 기법들을 쓸 수도 있고 광고에서 흔히 쓰는 화려한 트랜지션 효과들을 쓸 수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IDBZ5AsUuk

드라마 <셜록>에 나오는 다양한 화면 전환 기법을 뽀개놓은 영상


이런 연결을 잘만 활용하면 내용과 상관없이 재밌는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화면이 넘어가면 그 자체로 신기하고 재밌을 뿐만 아니라 다음엔 뭐가 오고 또 어떻게 바뀔지 기대를 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이탈하지 않고 집중하게 되죠. 반면 이런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영상은 마치 ppt 슬라이드 쇼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살아있는 영상 같지가 않아 지루하고 보는 재미가 떨어지게 되죠.


모션 그래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외국의 미디어들은 이런 화면 전환 효과들을 매우 잘 활용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VOX나 독일의 Kurzgesagt입니다. Kurzgesagt는 사회과학적 지식을 애니메이션으로 매우 쉽고 재밌게 풀어주는 곳인데요, 여기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면 전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5kNPlUV7w

Kurzgesagt, <Why Beautiful Things Make us Happy>


이 영상의 앞부분을 보시면 단순하게 슬라이드 쇼처럼 이어지는 화면이 하나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컷과 컷 사이를 모션을 통해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 붙입니다. 쌓아놓은 템플릿도 많은 것 같고 그때그때 나오는 창의력도 엄청난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컷 전환 기법이 저널리즘 영역에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 컷을 얼마든 붙일 수 있습니다. 배우가 바깥에 있는 문을 닫으며 세트장에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둘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찍는데도 배우와 문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가는 컷과 세트장에서 문을 닫고 들어오는 컷을 마치 한 공간에서 일어난 일처럼 붙일 수 있죠. 그런데 현상이나 개념을 설명할 땐 그런 걸 도무지 할 수가 없습니다. 저널리즘이 보여줘야 하는 대상은 움직이지 않거나 형체가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가지고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기


https://www.youtube.com/watch?v=5ms7iwWbCUs

닷페이스,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움직임은커녕 형체도 없는 개념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선 기본소득을 설명했는데요, 심지어 내용 어려웠습니다. 키네틱 샌드라는 소재로 기본소득을 형상화하긴 했지만, 모래도 혼자 움직일 수는 없었습니다. 도구를 아무리 이용해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밌는 움직임이 제한적이었죠.


그래서 이 영상에선 위의 Kurzgesagt 같은 트랜지션을 적극 시도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시작부터 타이틀이 나오기까지 약 25초 간 다양한 방법으로 화면을 이어보려고 했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컷들이 나열된 게 아니라 한 번에 촬영된 것처럼 효과를 내려고 했습니다. 주제가 너무 어려워서 영상에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아무도 안 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서 이 콘텐츠의 평균 시청 지속시간을 뽑아봤습니다. 초반 2~3초 간 한 번 빠져나간 후 초반 얼마 동안 매우 안정적으로 시청시간이 유지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기본소득이라는 끝판왕 같은 주제로도 제법 괜찮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한 번 짜내기는 매우 어렵지만, 몇 번 시도해서 Kurzgesagt처럼 일관된 패턴이 생기면 이후로는 그렇게 많은 품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전환 패턴그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도 있습니다.



2. 반복과 변주, 보는 사람과 밀당하기


다음은 위의 내용과 이어지는 겁니다. 컷을 이래저래 연결하는 방법이 익숙해진다면, 다음엔 이걸 가지고 일종의 밀당을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일정한 패턴을 만들었다가 그 패턴을 깨버리는 밀당입니다.


패턴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다음을 기대하고 예상합니다. 기대와 예상이 맞아도 재밌지만, 그러다 예상이 빗나가고 허를 찔렸다 싶을 땐 또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마술사나 코미디언들이 이런 방법을 잘 씁니다. 한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사람들을 몰아가 놓고 그 패턴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겁니다.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다가 적당한 순간에 깨버리는 일종의 밀당이죠. 좋은 음악도 이런 반복과 변주를 잘 활용합니다. 영상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C2dRkm8ATU

Chemical Brothers, <Wide Open> MV


이 뮤직비디오는 형식적 밀당을 설명하기에 매우 좋은 영상입니다. 영상 안에서 주인공의 몸이 하얗고 투명한 무언가로 조금씩 바뀝니다. 그런데 바뀌는 패턴이 매번 흥미롭습니다. 화면에 잠시 벗어나 있는 동안 사지가 하나씩 바뀝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팔이 기둥에 잠시 가렸다가 나오면 변해있는 식입니다. 카메라가 잠시 상체를 클로즈업했다가 내려왔을 때 다리 한쪽이 바뀌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영상을 집중해서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다음을 예상하게 됩니다. 이 영상의 경우엔 '아 이번에도 기둥 뒤로 들어가니까 이번엔 바뀌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설계를 잘한 영상은 이런 기대를 매우 잘 활용합니다. 이 영상의 경우 같은 패턴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 하는 패턴은 아니죠. 저의 경우 예측이 대략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얼마를 맞혔냐'가 아니라, '이걸 맞히려고 영상을 얼마나 뚫어져라 봤느냐'입니다. 이 뮤직비디오는 바로 이 밀당이 한 번 패턴에 맛들린 사람들을 끝까지 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영상이 가진 힘이 매우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패턴을 잘 가지고 놀면 분명 엄청나게 몰입도 높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뮤직비디오 같은 밀당을 부러워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보적인 수준에서 이런 반복과 변주가 저널리즘 영상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제가 시도했던 예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어설픈 밀당이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PxNxMMiicPM


이 영상은 헌법을 설명하고 개헌의 필요성을 얘기한 영상입니다. 위의 기본소득과 마찬가지로 이 헌법 영상 역시 주제가 주제인지라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영상적인 재미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려고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이 영상의 9초에서 15초까지를 보시면 약간의 반복과 변주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매치컷을 반복하다가 찢어버린 밀당


처음 네 개의 화면은 약 2~3초 정도 되는 짧은 순간에 슬라임 여러 개를 매치컷으로 붙여놓은 겁니다. 깔끔하게 표현되진 않았지만 마치 슬라임을 당기다 보면 색이 저절로 변하는 것처럼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서로 다른 슬라임을 늘리고 접고를 반복해 찍은 후 비슷한 위치, 모양이 됐을 때 다른 색을 찍은 화면으로 넘겨버리면 이런 효과를 낼 수 있죠.


여기선 딱 한 발만 더 나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슬라임의 색깔이 바뀌다 보면 저 짧은 순간에 사람들이 다음엔 무슨 색이 올지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종의 패턴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리고 나선 다음 컷은 그 패턴을 깨버리는 식으로 연결했습니다. 마지막 슬라임을 펼치기 전에 뒤에 다음 컷에 나올 사물을 놓고 슬라임을 찢어버린 거죠.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약간 기대를 만들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패턴을 만들었습니다. 이 영상도 평균 시청 지속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았고 말도 안 되는 조회수가 나왔습니다.


영상 초반에 온갖 필살기를 동원해보세요


물론 이런 걸 많이 시도할 수는 없습니다. 10분 이내의 해설, 뉴스 콘텐츠가 영화처럼 긴 기간을 가지고 편집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장치들을 간헐적으로 활용하시면 확실히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초반에 많이 활용할 것을 권장드립니다. 모바일 콘텐츠는 5~10초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요, 몇 초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초반에 온갖 잔재주를 많이 부리면 확실히 좋은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 제가 시도하고 효과를 봤던 영상의 형식적인 기술들을 두서없이 정리해봤습니다.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내용이지만,  내용만으로 한계를 느끼시는 실무자 분들에게 어느 정도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갈 길이 정말 먼 사람인데 너무 주저리주저리 써놓은 것 같습니다. 조언이나 피드백, 무엇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잼과 사투를 벌이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같이 꼭 저널리즘의 미래를 개척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광고 같은 뉴스 만들기-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