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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기획을 연구하는 사람

연구자 성격이 강한 기획자의 특징

by Yoo

R&D부문에 있다 보니 다른 부문보다 연구자 성격이 강한 기획자가 많습니다. 연구자 성격이 강한 것은 기본적으로 기획자의 전공이 공학베이스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학 전공이 아니더라도 연구자 중심의 사고방식이 프로세스/보고방식/문서작성/문화 등 조직 전반에 뿌리내린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기획자들도 자연스레 연구자의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연구자의 성격이 강한 기획자라 함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파고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기획에 있어 내가 만들에 내는 새로운 구조의 완결성을 추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분석을 통한 증거 기반의 논리를 추구하고요. 뭔가 선언적인 표현만 있고 디테일이나 내용 없이 기획이 진행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러한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 오면 현타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획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고민/생각이라는 단어입니다. 제가 연구자 성격이 강한 기획자라는 사실은 고민/생각이라는 단어가 저의 글에서 많이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공부하고 퍼즐이 맞는 답을 내려고 하는 연구자의 기질은 기획자에게 유용합니다. 기획의 본질이 변화이기에 이러한 기질은 기획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이들은 한번 기획을 시작한 이후에는 연구 모드로 들어갑니다. 말 그대로 기획을 연구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획에 필요한 적절한 수준의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정하지 않고 만족한 답을 낼 수 있을 때까지 내려갑니다. 넓게 보고 동시에 깊게 보려 노력합니다. 넓고 깊게 보기 때문에 연차와 상관없이 경영자에 가까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스태프(staff) 조직에 속해 경영자 레벨에서 현안을 제시하고 논의하는데 적절합니다. 특히 R&D조직의 경영층은 공학베이스의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아 잘 맞습니다.


연구자 기질이 기획자로써 충분히 강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연구자의 기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요. 약간의 강박 아닌 강박과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갖기 때문에 기획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입니다. 기본적으로 고민의 총량이 상당히 많아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의 2~3배의 고민을 짊어지고 삽니다.


체력이 유지되고 고민할 시간이 있는 시기에는 고민의 양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아니 단순한 커버가 아니라 초기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연차에 걸맞지 않은 고민을 하기에 통상 평판도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지 못하는 시기에는 한없이 다운사이클을 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나이와 연차가 쌓이며 연구의 방식을 유지하는 기획은 한계가 있습니다. 체력/시간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깊이 고민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직장이 연구자의 기질을 갖고 있는 기획자가 아닌 경우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조직장은 쓸데없는 고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기획자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조직장을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납기를 타이트하게 설정하는 조직장을 만나면 짧은 시간에 고민의 총량을 채우기 위해 야근을 하고 집에서도 일하게 됩니다. 때로는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기획자의 성향과 기질은 기획과정에서 때로는 득이 되기도 어떤 상황에서는 실이 되기도 합니다. 득을 강화하고 실을 보완하는 시작은 내가 어떤 성향과 기질의 기획자인지를 아는 감각입니다. 이 감각은 성향/기질을 마음껏 드러내며 실무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딧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을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억지로 죽이기보다는 개성을 일에 드러내는 것 좋습니다.


성향을 분명히 드러낼 때 단기적으로는 부딪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색을 드러내고 부딪치며 조금씩 깍혀가는 것이 길게 보면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알아가는 길입니다. 자신이 기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기획자는 강점과 약점은 분명히 인지하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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