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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임계점을 넘는 고민의 총량

고민의 총량을 함께 쌓아가는 사람과 구조의 귀중함

by Yoo

저연차 사원 시절 저를 참 좋아해 주었던 5년 이상 차이가 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선배는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저의 생각을 들어주고 의견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남에게 대가 없이 써준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선배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선배의 대답은 '회사에서 무언가에 대해 발전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후배가 정말 귀하다'였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단순히 그냥 듣기 좋은 칭찬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시 선배의 연차가 되어보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민의 총량을 쌓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획이 기획되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누적된 고민의 총량이 특정 지점을 넘어서야 한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특히 기획의 범위가 넓고 연계되는 영역이 많을수록 필요한 고민의 양은 더 많아집니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고민의 총량을 요구하는 기획을 자의와 타의로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스스로 고민의 총량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저연차 기획자는 오롯이 나의 기획에 내가 넣을 수 있는 고민의 총량을 모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연자 기획자는 조직/관계 등 기획의 주변일에도 고민을 할애해야 합니다. 정말 현실적으로는 육체적 지적인 퍼포먼스도 어느 순간 꺾이게 되고요.


이때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나와 함께 고민을 나누며 그 고민의 총량을 채워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동연차 혹은 선배는 나와 비슷하게 고민의 총량을 더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고민해 주는 후배의 귀중함이 느껴집니다.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의 희소성은 고민의 성과가 당장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옵니다. 아니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기획을 위한 고민의 결과는 비난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획을 보고 있어 보이는 질문을 하기는 쉽습니다. '이것을 하면 무엇이 좋아지는 것이죠? 이런 경우는 적용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공수대비 효과가 적은 것 아닌가요?' 등의 질문 말이죠. 당연히 아직 고민의 총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 저연차 기획자는 이러한 종류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기획을 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질문을 하는 그 사람조차도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와 같은 발전적인 피드백을 주기 어렵습니다.


오늘도 어떤 후배는 저에게 3개의 기획안을 냈는데 2개가 기각되고 1개는 보류가 되었다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진다는 자조에 섞인 말과 함께요. 제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행동과 말은 그 예전 선배가 저에게 했던 것 그대로였습니다. 그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내서 고민해 주고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 주는 것이요. 특히 그만의 고민의 총량을 쌓는데 도움을 주는 발전적인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을 갖자는 말과 함께요.


고민의 총량에 대한 생각은 개인을 넘어 조직관점에서도 생각해야 될 주제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기획은 고민의 총량의 임계점을 넘어야 세상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임계점은 일반적인 개인의 고민의 양을 초과합니다. 따라서 조직장은 구성원 각자의 고민을 넘어 사람들이 모여 고민의 총량을 함께 쌓아가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고민을 쌓는 구조와 문화가 없다면 각 구성원이 나름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데 고민의 임계점을 넘지 못하여 제대로 된 결과를 맛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민을 열심히 하지만 그것이 쌓이지 못하고 휘발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기획자 그리고 기획조직에게 축적된 고민의 총량이 곧 실력입니다. 고민의 여정이 곧 기획자의 커리어입니다. 올해 그리고 단기적으로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기획들을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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