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호등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곧 바뀔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곧 바뀔 거야, 좋게"
<조선진, 반짝반짝 나의 서른 >
어느 봄날,
장인어른과 장모님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다녀오는 길에 차가 이상하더군요.
신호에 정지해 있다가
가속페달을 누르는 깊이만큼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운행을 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하고 무심결에 지나갔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벌어졌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 집을 가는 길,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지 뒤 신호가 바뀌어서
중립(N)에서 드라이브(D)
기어를 올린 후 가속페달을 밟았어요.
그런데 웅~ 소리만 날뿐 차가
더 이상 가질 않는 겁니다.
어제와 오늘 길보다 증상이 오히려 심해진 거예요.
뒤에 줄 서있는 차들이
연신 경적소리를 울려대는 가운데
어떻게 출발하기 했지만 증상은 멈추질 않았어요.
저속으로 운전하며
겨우 집 앞 공업사에 도착했을 때,
가족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불안한 마음을 쓰려내렸습니다.
다행히 문제점도 발견하며,
마무리가 되었던 하루였습니다.
이번 일로 두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통증을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동차도 그렇고 사람도 아프면
통증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렇지만 막상 먹거나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으면 무시하곤 해요.
초기에 진압하면 변수의 폭을
줄여주는 데도 말이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치료를 하면
더 아프고 통증도 심해져
치료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투여됩니다.
왜냐면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아
약이나 처방이 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죠.
스스로 병을 키우는 대신
바로 처방을 받아 예방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입니다.
두 번째, 서로에게 부탁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긴급한 상황임에도
우리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나 사람이
도처에 있기 때문일 거예요.
만약 차량이 상황이 좋지 않아
공업사에 맡길 상황이 아니더라도
보험회사에 연락해 해결이 가능하니까요.
특히 생명을 살려내고 고치는
병원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요.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알게 모르게 자신이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문제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도 하지만
도움을 서로 주고받기에
더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깜깜한 밤 길 보이지 않는 밤,
등대와 가로등이 있다는 것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