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유는 쉽게 오지 않았다.

by MOAI


어머니를 내 시각에서


바라보면, 평생 루틴은 이렇습니다.



짧은 저녁잠을 자고,


새벽 3시나 4시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합니다.



어릴 적에도 그랬고,


아니나 다를까


지난 설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그랬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준비해서


일어나 바로 밥을 먹을 수 있게


수십 년간 해온 것이죠.



우리는 그냥 일어나 수저만 들어도


될 일이니, 어린 시절 반찬 투정했던


기억이 왜 이리 미안한지.



그러면서 문득,


내가 지금 쉽게 누리는 여유는


어느 것 하나 쉽게 온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친분이 두터운 사회 선배와


지낼 때도 그렇습니다.



취직이 잘 되었거나 가족에 경사가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축하해 줍니다.



무엇보다 난제가 생기면


(일하다 막힌 부분이나 이직 문제, 애사)


겉으론 무표정이지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은밀하게 뒤에서 도와주곤 합니다.



그래서 그 선배들과 만나


저녁 먹을 때면


같이 농담하고 웃는 시간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그 자체로 선물과 같죠.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대학 동기가 집 근처를 찾아왔었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대학시절 시험기간 에피소드가


대화중 튀어나왔습니다.



대학재학시절, 내 원칙이 워낙 완고했는데,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물어보더군요.



그 당시 내 원칙은 이러했습니다.


아무리 놀아도 수업은 빠지지 않기,


시험 기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공부하기였습니다.


(어떤 동기들은 놀자고 찾아와도


절대 안 된다고 만나 주지 않았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재수를 하였는데,


약 8개월치의 재수학원 비용을


누이가 책임지고 도와주었던 거죠.



그때 강의하는 어느 선생이 말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비용이면 경차 한대 값은


거뜬히 나온다고.



그러니 나는 대학을 진학해


시간을 낭비하며 놀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학생 본분이겠지만.


(물론 수업 시간과 시험기간 이외에는


동기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



수업을 빠져가면서


공부를 하지 않는 건


헌신한 누이에 대해 모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학 동기는


내가 왜 그렇게 대학 생활을


했는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무리 내가 잘났어도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없다면


지금의 누리는 여유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잘 살아가고 있더라도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토대가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운은 70%,


노력은 30%라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도움들이


여기저기 얽히고 섞여서 연결되고,


나에게 기회가 생기고


그렇게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겸손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사람 간의 도리입니다.



오늘의 여유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합니다.








'행복 앞에는 기쁨이 있고,


'기쁨' 앞에는 만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족 앞에는


바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


혹은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때


행복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나태주, 너를 아끼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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