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죽음을
아주 막연하게 생각하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바로 내가,
누구보다 소중하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게 된다.
생각만 해도 섬뜩하지만
순식간에 스쳐 지나는
이런 통찰이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육신이 언제가 소멸한다는 걸 알면,
이승을 하직해야 한다는 걸 알고 나면,
우리는 달라진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과 달콤한 행복을 동시에 맛봤다.
사기그릇의 아름다움이 내 안에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샐리 티스테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일을 하다 보면 무언가 막힐 때나
조금 버거울 때 막연하게
"아이고 죽겠네" 하고
내뱉는 경우를 봅니다.
아무래도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한숨부터 나오는 게
사람의 습성이죠.
그리고 그 일이 막히면 다른 일도
연쇄적으로 엉키기에
조급한 마음이 일으킨
심리적 상태이기도 합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영화배우 덴젤 워싱턴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창작의 고통으로 힘들겠어요?"라고 물으면
"이게 뭐라고요,
오히려 진짜 힘든 건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
파병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들이 진짜 힘든 것이죠."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고 하죠.
저 역시 그 말을 하지 않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지난 6~7년 전,
퇴근시간 되면 아픈 누이를 만나러
곧장 병원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암 병동을 가면 놀랬던 건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과
그중에도 젊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에요.
심지어 누이처럼 어머니가 병간호를
하고 계신 분들을 여럿 만났고요.
나이가 젊다 보니
살고자 하는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평소 먹지 않았던 건강 식단부터
걸을 수 없는 상태임에도
정해진 시간 복도에서 한발 한발
걷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환자들끼리 오가는
오랜 대화 끝에는
두 손을 꼭 잡으며 오래 살아보자고
격려하는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그저 그렇게 생각한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원했던 하루입니다.
그 모습을 본 이후로 제 입에서는
"힘들다, 죽겠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놓게 되었습니다.
생과 사, 그 사이에 있는 사람에 비하면
지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단지 잠시 힘들 뿐이죠.
생각해 보세요.
한 달 전 걱정했던 일 지금은 어떤가요?
힘들었단 말이 무색할 정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음으로써 끝을 맺습니다.
끝난다는 것은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해요.
다시 오지 못할 시간,
스스로 힘들다 죽겠다고 쉽게 말하는 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행위와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고,
아무런 아픔과 어려움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 또 감사한 일이에요.
조금 힘들다고 느껴지면,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 remember to die)
문구를 꼭 기억하세요.
그 앞에서 아무 일도 아니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