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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Aug 04. 2018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도미오카 다에코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ipad procreat + Photoshop + wacom pen    도해씨


당신이 홍차를 끓이고 

나는 빵을 굽겠지요

그렇게 살아가노라면

때로는 어느 초저녁

붉게 물든 달이 또 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때로는 찾아오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것으로 그뿐, 이제는 이곳에는 더 오지 않을 걸

우리는 덧문을 내리고 문을 걸고

홍차를 끓이고 빵을 굽고

아무튼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마당에다 묻어줄 날이 있을 거라고

언제나 그렇게 이야기하며

평소처럼 먹을 것들 찾으러 가겠지요

당신이 아니면 내가

나를 아니면 당신을

마당에 묻어줄 때가 마침내 있게 되고

남은 한 사람이 홍차를 훌쩍훌쩍 마시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이야기는 끝나게 되겠지요

당신의 자유도

바보들이나 하는 이야기 같은 것이 되겠지요


                                          -도미오카 다에코-


집을 짓고 이사를 하고 넓은 창가에 책상을 마련했다. 오래된 책들의 먼지를 털어내다 신현림의 '나의 아름다운 창(신현림 영상 에세이)'를 발견했다.  갈변된 책장들을 이리 저리 뒤척이다 발견한 도미오카 다에코라는 일본 작가의 시이다. 책을 구입한지 20년은 족히 되었을 법하니 그 시절에 저런 시가 내 눈에 들어왔을리가 없었을 터. 한지와 먹을 준비해서 필사를 한 후 조마담에게 가져다 주었더니 가게 흰벽에 마주한 자기 작업 테이블 전면에 척하고 붙인다. 마음이 흡족하고도 제법 숙연한  표정이다. 

집을 짓고 이사를 하고 몹시도 행복해 했던 2015년도 5월의 이야기이다.

벌써 3년이다.  

누가 누구를 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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