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해탈1

봅은 오고 지랄이야~~~

by 도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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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고 했지요 (시인 -함민복 ) 내 낡은 가슴속 저장장치, 탐진치의 흔적이 남긴 배드 섹터 위에도 기어이 미지근한 꽃 한 송이 피어나길. 바라봅니다. 그런 희망도 없다면 은퇴한 늙은이의 남은 힘과 짓누르는 허무를 어찌 감당할까요.


젊은 시절의 메모리가 제법 생생했었다면, 지금은 접촉 불량이 잦은 중고 램쯤이려나. 두 달 전쯤 읽었던 금강경을 다시 읽으니 읽었던 적이 있나 싶습니다. 정보를 입력하면 칩에 기록되기도 전에 누설 전류(번뇌)가 발생해 데이터가 날아갑니다. 금강경을 읽어도 남는 게 없는 건 저의 잘못이 아니라, 메모리 클럭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려 하면 머리에 열이 납니다. 이때 하드웨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성능을 강제로 낮추는CPU 과열 방지 시스템. 쓰로틀링(Throttling)이 작동된다고 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자자!" 책을 덮는 것은 뇌가 타버리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쿨링 시스템입니다.


하드디스크의 배드 섹터. 가슴속 깊은 곳 저장 장치 '열정'이라는 데이터가 기록되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배드 섹터는 살아오며 충족하지 못한 탐진치의 흔적과 상처인가 봅니다. 뜨거워지고 싶어도 기록 장치가 그 고열의 데이터를 감당할 수 없으니, 시스템은 늘 '뜨뜻미지근'한 저전력 모드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읽자마자 휘발되는 것. 남기고 가져갈 것 없으니 이것도 어쩌면 작은 해탈인지요?


내 낡은 가슴속 고물 저장소, 상처 위에도 기어이 미지근한 꽃 한 송이 피어나길 바래보는 새벽입니다. 인생 배터리 2% 즈음 남았을 때, 비로소 나는 오버클럭(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열망)을 멈추고 저전력 모드의 평온을 배우고자 합니다. 남은 에너지는 오직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는 데만 써야겠지요.

그러나 돌아보니 고물저장소, 그 상처는 여전히 붉게 일렁이고 있네요. 다 비우자 비우자 다짐하지만, 비워야 할 것들 아직도 끈질기게 남아있나 봅니다. 아마도 이 배터리가 0%가 되는 그날까지, 그 일렁임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기억은 스쳐 가는 캐시 데이터요, 가슴속 배드 섹터는 사멸하지 않는 좀비라. 아하~ 못난 중생이여! 이 고물 하드웨어에 휘발되는 기억과 수시로 도발하는는 상처를 탑재하고 어찌 평정심에 도달할 수 있을까만... 그저 오늘 하루, 저전력 모드의 평온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젠장! 합장!

20260604 병오년입춘날


겨우내 얼음장 밑에서 쇠붙이로 돌을 치듯, 혼자 구옥을 손봤다. 직각도 수평도 맞지 않는 허름한 집, 삼면벽에 단열을 덧대어 마감하고, 나머지 면에 문을 달고 창을 내었다. 바닥엔 전기온돌를 깔았다.허리와 손목이 욱신거리고 발끝이 저려왔지만 낡은 벽보다 견디기 힘든 건 내 안의 균열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잘못된 것은 없는가, 아뿔사 이건 아니었네 - 머리에 열난다- 에라 모르겠다 - 드릴이다 콤프레샤다 이번엔 전기톱이다 우당탕) 그렇게 2평 남짓한 나만의 동굴이 완성되자, 때맞춰 입춘이 되어버렸네. 계절 맵 대규모 업데이트 완료— 이 미련한 중생, 이제 공들여 만든 동굴을 버리고 초원으로 기어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봄은 오고 지랄이야~~~! 라고 정태춘 님께서 그랬다. (정태춘 박남준 - 섬진강 박시인)

나도 나즉이 따라 해 본다. 보~옴은 오고 지라알 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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