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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Aug 04. 2018

캘리그라피 #1

봄은 오고 지랼이야 





캘리그라피 #1      봄은 오고 지랄이야,   화선지에 먹,   도해씨 손글씨





정태춘씨의 노래 '섬진강 박시인' 중 한토막.


섬진강 박시인 / 정태춘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던 밤 등불은 껐느냐
누옥의 처마 풍경소리는 청보리밭 떠나고
지천명 사내 무릎처로 강바람만 차더라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 비는 오고 지랄
십리 벗길 환장해도 떠날 것들 떠나더라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더냐 
악양천 수양 버들만 머리 풀어 감더라

법성포 소년 바람이 화개 장터에 놀고
반백의 이마 위로 무애의 취기가 논다
붉디 붉은 청춘의 노래 초록 강물에 주고
쌍계사 골짜기 위로 되새 떼만 날리더라

그 누가 날 부릅디까, 적멸 대숲에 묻고
양지녘 도랑 다리 위 순정 편지만 쓰더라
                                              

                                           정태춘 박은옥 12집 [바다로가는 시내버스]  中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 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박남준, 「봄날은 갔네」中



섬진강 박시인 박남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누리며 사는 박남준의 일상은 그대로 시와 산문!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선택하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주 모악산으로 들어간 박남준 시인. 현재 지리산 자락 악양 동매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연간 에너지 소비량이 가장 적은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스스로 ‘관값’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장례비 200만 원만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넘치면 여기저기 시민단체에 기부를 하며 살고 있다. 먹여 살려야 할 부양가족도 없고 신문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수돗물도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하루에 두 끼 먹을 때도 있고 한 끼 먹을 때도 있는데 그나마 장정 숟가락으로 두어 번 뜨면 없어질 정도로 적은 양이다. 적게 먹는 만큼 똥도 적게 싸는데 그마저도 아궁이에서 나온 재와 함께 호박 구덩이나 텃밭으로 돌아가니 도무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삶이다. 거름 문제 해결을 위해 오는 손님들에게 제발 집에 가서 싸지 말고 여기서 해결하라고 부탁할 정도다. 치약 대신 구운 소금을 쓰고 설거지에도 모래나 재를 쓰고 빨랫비누나 세숫비누도 다 물에 잘 풀어지기 때문에 버들치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용량을 쓴다. 이런 일들이 무슨 환경 친화 운운하는 관념론자 얼굴 알리기가 아니라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다. 머리만 안 깎았을 뿐 스님도 이런 스님 보기 힘든 세상에 그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는 결혼은 안했지만 버들치 30여 마리가 자식으로 등록되어 있고 복수초와 물봉선과 진달래와 산나리와 온갖 산새들이 그의 가족이며 감나무 오동나무 낙엽송 도토리나무들이 그의 식구이다. 또한 배 다른 청설모와 다람쥐와 곤충들이 그와 함께 잠들고 비오면 비대로 눈오면 눈대로 바람 불면 풍경 소리대로 그를 둘러싼 해와 달과 구름과 별들이 모두 그의 혈연이다.[예스24]


예스체널 작가와의 만남_ 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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