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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May 31. 2023

작명가 김팔씨의 하루

지은 지 8년째인 내 집 이름은 ‘넘버나인’이다. 집을 짓고 입주하기 전 근사한 집 이름을 짓고 싶었다. 아내와 의논하니 나에게 맡겨 버린다. 말이 ‘맡기기’이지 실은 작명 후 자신에게 결재를 득하라는 이야기이다. ‘○○재’, ‘○○당’처럼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이름으로 하자니 건물의 외형이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조감도는 건축사무소에서 그려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안그려줘서 건축주인 내가 직접 그렸다.

         

회색징크의 박공지붕에 흰색 스타코 플렉스로 마감했다. 다양한 선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각도와 면면과 덩어리들이 모던미학의 변용 어디쯤인지, 포스트모던한 것인지 프로그레시브 한 것인지 뭔지 여하간 건축 문외한인 나로서도 보는 방향마다  혹은 유심히 볼 때마다 만족스러운 미감을 느끼게 해주는 장르를 초월한 스타일리시한 집이다. 게다가 무소의 뿔 같은 내 아내의 강철 영혼에 짙은 흔적을 남긴 드물지 않은 경험을 선사해 준 집이다. 그런 내 집에 ‘○○재’라는 식의 이름을 붙인다면 배우 정우성 이름을 ‘박오봉’ 혹은 ‘박팽년’으로 작명해 버리는 것과 같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작명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가족 전체가 공유하는 공간에 누구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이름은 가족 구성원 특히 아이들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며칠을 곰곰, 건성,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결혼 후 우리가 살아온 집의 개수를 헤아려 보니 꼭 아홉 번째 집이었다. 가정을 이룬 후 새마을 보일러와 연탄아궁이가 있는 부엌을 출입구로 이용하는, 마당의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는 단칸 전세방에서 시작했고 아파트를 분양받았을 때가 여섯 번째 집이었다. 그 후로 몇 군데를 거쳐 아홉 번째로 마련한 집 그래서 ‘넘버나인’이라고 지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처럼 우리 넷이 어울려 근사한 가족 코러스를 만들어 가자는 의미도 붙여 보았다. 게다가 동갑인 우리 부부는 스물아홉 되던 해인 아홉수에 결혼했다. 어른들의 걱정과 만류에도 우리에게 붙은 아홉수는 불운의 기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 집이다. 이리저리 끼워 맞추니 가족의 역사가 담겼고 가족들이 노력해야 할 방향도 느껴지는 이름이라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이름이 되었다. 가족 모두 좋아해 주었다. 결재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집을 짓고 입주한 그해 가을 초입에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집 마당에 찾아왔다. 좀처럼 경계심을 풀지 않는 녀석에게 손가락을 물린 적도 있다. 곡절 끝에 내 마당을 제 터로 삼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가을에 우리 집에 왔으니 이름은 추추(秋秋)로 지었다. 가족들이 모두 그 이름을 좋아해 주었다. 암양이 추추는 고등어 무늬가 선명하고 성격 온순하고 움직임이 신중한 고양이었다. 그런 몇 달 후, 처남에게서 연락이 오길 도심 뒷골목에 온몸 피부병을 앓고 있는 빈사 상태의 고양이를 발견하고 병원에서 한 달 가까이 치료하여 회생시켰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기르다 사정이 여의찮아 아파트로 옮겼는데 아파트에서 기르는 것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었다. 하여 우리 집에 들이기로 했다. 그즈음이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어서 이름을 동동(冬冬)으로 지었다.


가족들 모두 그 이름을 좋아해 주었다. 어느새 나는 고양이 작명가가 되었다. 동동이는 턱시도 무늬의 표준이 될 만큼 우아하고 정확한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가족 모두 “와! 예쁘다” 하고 입을 모아 동동이를 맞이했다. 좌충우돌, 천방지축, 통제불능, 사고뭉치, 뻔뻔철면의 발암캐릭터임이 금방 드러났지만. 아내는 동동이에게 평소 덤벙대길 잘하는 나의 성을 따라 김동동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얌전하고 신중한 추추에게는 자신의 성을 붙여 조추추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면 다음 고양이 이름은 김春春이 조夏夏. 어느새 고양이 이름 짓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내심 즐겁기만 했다. 고양이 집사의 고난 따위는 염두에 없이.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에 눈이 무척 예쁘게 내렸다. 눈 즐김이 끝나고 잠을 청할 무렵 마당이 소란해서 내다보니 동동이가 동네 남정네 냥이와 거사를 치르는 중이었다. 주변에서 중성화 수술을 많이도 권했지만 아내와 나는 ‘性的자기결정권’ 운운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 느슨하게 생각했었다. 어쨌든 동동이는 자기주도적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아낌없이 없이 발휘했다. 몇 달 후 동동이는 해산을 했는데 그때의 긴장감을 묘사한다면 짧은 글에 다 닮을 수 없으므로 그 이후의 이야기로 바로 이어보자.  


동동이는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낳았다, 산통을 제법 잘 견뎠고 침착하게 뒤처리했다. 한 마리는 낳은 직후에 죽었고, 네 마리는 건강하게 앞다투어 어미의 젖을 찾았다. 가까운 동물병원에 가서 건강을 체크했다. 이상 없이 모두 건강한데 한 가지 이상하다 했다. 네 마리 모두가 수컷인데 이런 경우는 좀처럼 드문 현상이라고 했다. 네 마리의 고양이 중 한 마리는 흰색과 검은색의 얼룩무늬, 나머지는 모두 올블랙이었다. 고양이 작명가의 머릿속에는 단박에 중학 시절에 읽었던 <삼총사>의 캐릭터들과 그 이름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고개를 거만하게 들치며, 느그 거~! 머시고?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라는 소설 아나? 아나 모리나? (배우 최민식 버전)로 시작하여 얼룩이 이름은 달타냥, 나머지는 순서대로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로 지었다. 이번엔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딸아이는 달타냥 만은 좋아하는 듯했고, 그 이후로 딸의 만행으로 아토, 왈라, 뽀루라는 이름으로 개명된다. 이들 고양이 총사들도 넘버나인의 역사에 동참하여 웃음과 울음을 함께하게 된다.

고양이 작명가 김팔씨에게는 아호가 있다. 대학 시절 장난 삼아 지은 것인데 나는 이 호가 무척 맘에 들어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고 있다. 도해(桃亥)이다. 복숭아 도, 돼지 해, 무릉도원의 배부른 도야지라는 뜻이다. 근사하지? 내 게으른 성격과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아주 아주 문학적으로 해학적으로 평화스럽고 유토피아적으루다 표현한 탁월한 작명이라는 생각을 숨길 수 없다.     


작명가 김팔씨의 본명은 김○○이다. 흔하디 흔한 성씨에 이름마저 흔한 영철이라 살아오면서 겪은 우여곡절도 적지 않은데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 나 말고 또 한 명의 ○○이가 있었고 그의 성도 김 씨였다. 한 반에 같은 이름이 두 명인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는 너무도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평생을 같이해온 내 이름이 김○○이 아닌 때가 딱 한 번 있었는데 중학 1학년 시절 영어로 자기소개하기에서 ‘마이네임이즈 ○○ 김!이었다.           


그 시절에는 영어로 이름을 부를 때 영어권의 관습대로 이름과 성의 자리를 바꿔야 했다. 그것이 선진 입국하는 일이며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일인 듯 배웠고, 왠지 어색한데 어색한 것은 근사한 것이라고 느껴야만 하는 듯했다. 그때도 내 이름은 근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 분의 하나일지라도 우리 집안이 강철 같은 뼈대가 버티고 있는 가문이었고 내 조부님이 살아계셨다면, ‘내 이름은 ○○ 김’ 하는 내게 아마도 재떨이를 집어던지거나 곰방대를 마구 휘두를 일이었지 않았을까만,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그런 방식의 호칭이 사라졌는데 손흥민이 흥민 손이 아니고 봉준호가 준호 봉이 아니고 윤여정이 여정 윤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펄펄 살아서 나날이 커가는 감나무를 감목재라고 부르는 것 같은 그 어색한 느낌은 나만의 것이려나?        

  

어쨌든지 늘 언제나 누군가에게 불리든가 어디선가 서명을 해야 한다거나 혼자서 생각을 하다가도 흔하디 흔한 이 내 이름이 늘 불만이었다. 어느 날 내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곰곰, 건성, 심각하게 작명을 해보았다. 내 집과 내 실존의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이름을 너무 쉽게 발견하였다. 아! 나는 역시 탁월한 작명가 아닐까? ‘金九!’     

金九......!          

훠~어! 이게 뭔가? 인생 살아오며 순국선열, 겨레의 스승님을 원망하는 날이 있을 줄이야. 어쩌지? 하는 순간 ‘그러면 하나 빼면 되지 뭐’ 金八! 어딘지 좀 팔푼이스럽긴 했지만 그냥 결정해 버렸다. 본명보다는 팔억 팔천만 배 좋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말했다. “앞으로 나를 김팔로 불러주시오!”

                                                                                                   

지난 추석을 앞둔 무렵 지인들과 우리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마당 저편에서 아내가 나를 불렀다! “어이 김팔!” 김팔을 순간 ‘긴팔’로 들어버린 지인들이 의아해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서로의 윗도리를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나를 포함한 모두가 긴팔이 아닌 반소매를 입고 있었고, 나를 제외한 모두의 눈망울에 물음표가 가득했고 그 눈망울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웃음을 터뜨릴뻔했으나 초롱한 눈동자들을 외면하고 먹고 있던 사과가 맛있어 죽을 지경이라는 듯 우걱우걱 씹었다. 유난히 맛난 이 사과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름이 근사해서 사과가 이토록 맛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했다.     


김팔 씨의 대답을 기다리다 살짝 짜증이 났는지, 아내는 더 큰소리로 “야! 긴팔!” “긴팔!” 하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뭐가 들었는지 모를, 혹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이라도 담겼을까 싶은 커다란 비니루 봉다리가 손에 쥐어진 채 휘휘 흔들렸고. 지인들의 물음표 가득한 눈동자들도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 뒤로 짙어지는 단풍잎이 바람에 흔들렸고 또 그 뒤로 넘버나인의 그림자가 천천히 길어지고 있었다. 이름값 걱정 없는 김○○씨의 하루. 그 이름처럼 흔하고 흔한 날들의 중의 하루가 약간의 소란으로 흔들리며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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