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생가 주변 생태공원은 공원의 공간구성이 인조의 냄새를 많이 풍기지 않아 좋다. 본래의 식생들을 잘 살렸고, 추가로 조성해 놓은 식생들도 잘 어우러지며 관리 또한 잘 되고 있다. 관리가 잘되니 찾아오는 사람들도 질서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책로에 자전거 통행을 제한하고, 텐트를 비롯한 유흥 장비나 시설물의 설치를 금지하며 철마다 산책로 정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흡족한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는 곳이어서 한가할 때, 가족 나들이, 지인 방문 구경 나들이 중 가장 자주 찾는 코스가 되었다. 내 집에서 느린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며 팔당댐을 끼고 있어 주변 풍광 또한 일품이라 할만하다.
지난여름 어느 날 혼자 나선 산책을 마치고 공동화장실을 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 삼십 대 중반의 사내가 아이를 대동하고 역시 화장실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우리는 약 3~4m의 간격으로 마주 보며 걷는 상황이었다. 그 젊은 아빠가 갑자기 제 왼손 어느 손가락 인가로 오른 콧구멍을 막고서는 휭! 하는데, 허연지 누런지 분간을 못 할 속도로 보도블록에 찰싹 달라붙었다. 내 눈동자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동으로 그 궤적을 따를 수밖에 없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사내, 내가 불쾌한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반대편 콧구멍을 통해 같은 행동을 이어갔는데 그 기민함은 전광석화였다. 제 손가락을 바지 어디쯤인가 쓱 문지르는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고, 나는 그냥 불쾌한 마음으로 이 코로나 시국에 저런 무례와 불결이라니 라는 소리를 속으로만 주억였다. 홱! 하니 화장실로 입장하였다. 화장실 용무를 해결하던 중 예의 그 젊은 아빠와 아들이 화장실로 뒤이어 들어온 듯했고,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뒤통수로 듣게 되었다. "너는 안 눠?" 꼬마가 "응!"하자 "그럼 손이라도 닦아!" 하니 아이의 명랑한 대답이 격자무늬를 이룬 타일 여기저기에 좌표를 옮겨 다니며 반사음으로 울려왔다.
이후 그 아빠의 훈육이 흐르는 수도 물소리를 타고 들려왔다. “깨끗하게 생활해야지 우리 아들! 청결을 정말 중요한 것이야!" 듣고 있던 나는 어이가 가 없어 순간, 쿡! 하고 비명 반 조롱 반을 섞은 괴음을 지를 뻔했다. 몸에 진동이 발생했던 바람으로 하마터면 내 바지에 나의 그 액체 일부를 묻힐 뻔하였다.
망할!
내 집 담장 바깥이 소란한데 간간이 담장에 둔중한 충격이 가해지는 소리도 함께였다. 머리꼭지에 물음표를 하나 달고 나서보았다. 집 앞 폐 간이역과 철길 공원에 나들이 온 젊은 아비와 초등으로 보이는 아들이 담장을 뒷막이 방패로 삼아 캐치볼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부자간에 빨간 야구 글러브를 옴팡지게 장착한 맵시 있는 몸놀림이었다. 담장은 나왕 한치(2.8㎝*2.8㎝)의 각목을 세로로 두 겹 어긋나게 세워서 제작한 것이다. 세로로 세워진 두 각목을 가로지르는 철제 파이프가 내부에 서너 줄이 자리 잡고 있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내보기나 남들이 보기에 제법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것이다.
그것이 일견 견고해 보이기는 하나, 나왕은 목질이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말하자면 밀도는 낮고 경도는 높은 특성을 가진 재료여서 가늘고 긴 구조일 경우 횡으로 작용하는 충격에는 쉽게 부러질 수가 있다. 휴일이면 차량 왕래가 빈번한 곳이기도 해서 혹 있을지 모를 외부 충격에 얼마간의 신경을 소모하고 있던 차였다. 해마다 스테인을 칠하려면 그 고역이 말도 아니다. 그런데 그 우아한 벽에다 단단하기로는 짱돌에 버금가는, 과장하자면 헐크 주먹만 한 야구공을 마구 집어 던지고 텅텅거리는 소란을 피우는 그 젊은 아비를 보는 순간 물음표의 꼭지가 돌연 고속 회전하며 뚜껑이 열릴 기세였다.
점잖게 일러서 다른 곳을 찾아보시라 말하니, 눈알을 이리저리 뒤룩이곤 고개를 좌우로 탐색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떠버리는데,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영문을 이해 못 하는 아이만 제 아비를 뒤따르며 “아빠 왜 못하게 하는 거야?”를 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망할!
어느 화창한 날 한낮이었다. 마당에 한창인 꽃들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둥 책장을 넘기는 둥 한가한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바깥이 어른어른커늘 님만 너겨 뚝 하고 뛰어 나서보니, 님은 간데없고 웬 중년 사내놈이 내 마당 수돗가에 서서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내가 딴 세상에 도착했나 싶었다. 대낮에 사람의 기척이 있는 남의 집 마당이고 사방은 개활 되어있는데. 뭐 이런 사차원 같은 상황이 다 있나? 했으며 '신종 무관중 바바리맨'의 등장 인가하고 의아해하는 나의 손에 몽둥이가 없었음을 저나 나나 다행으로 알아야….
(하략)
으아아아!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