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혀를 가진 여인이 붕어빵 먹는 법
본에는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식성을 가진 사람을 고양이 혀(猫舌:네코지타)라 놀리는 풍습이 있다. 사람의 식습관을 고양이에 빗대어 말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고양이와 밀착된 생활을 해왔는지 이해가 가는 용어이다. 일본의 민간전승과 민속학의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가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신성한 영력을 지녔다고 믿었고, 신묘한 불법의 세계와 연결된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런 전통은 일본의 헤이안 시대(서기 79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유난스러운 고양이 사랑이 어느 한순간에 시작된 시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처럼’ 불길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존재로 여겨지기에 십상이었던 우리네의 일상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성장기에 주변 어른들에게서 들어온 고양이의 일화들은 요물, 불행, 복수 등등이었고,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불길하고 불행한 장면에는 늘 고양이가 등장하곤 했었다. 어떤 이유로 일본과는 다른 문화가 지배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조선 영조 대의 도화원 화가 변상벽의 그림에 닭과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에 대한 유난한 오해와 핍박의 정서는 없었던 듯하다. 변상벽이 하도 고양이를 자주, 많이 그려대는 바람에 친구들이 ‘변고양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고양이 혓바닥은 흡사 사포와 같이 날카롭고 거칠다. 고양잇과 동물들의 일반적인 특징인데 이는 사냥당한 짐승의 거죽을 사포처럼 문질러서 벗겨 내는 등 육식과 관련이 있으며, 하루의 상당 시간을 털 고르기인 그루밍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도록 진화한 고양잇과 짐승이 가진 혀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고양이 혀를 가진 여인'은 나와 같이 사는 여인네가 뜨거운 음식을 유난히 먹기 힘들어하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아 가끔 놀리는 투로 붙여준 별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인의 혓바닥이 사포처럼 날카롭다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와 말투는 온유하고 부드러우며 다소 느린 편이라 날카로움을 떠올릴 수는 없다. 다만 가끔 과도하게 사무적으로 변하는 말투에서 제록스 복사기가 뱉어내는 각지고 반듯한 A4용지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래서 '제록스 혓바닥의 여인'이라는 별명도 준비 중이다. 혹은 'A4 혓바닥의 여인'이 더 나으려나? 아무려나, 심통 비뚤어지면 끝 간데없는 독설을 뱉어내는 나의 혓바닥보다는 훨씬 사회성 높고, 실용성 강한 혓바닥이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는 실용성이 제로에 수렴하지마는.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라는 말이 있듯이 대부분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고양이는 영양분 중 타우린이 부족하면 생식능력 저하, 야맹증, 실명 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스스로 타우린을 합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타우린이 많이 들어간 먹잇감을 찾게 된다고 한다. '고양이 혀를 가진 여인'의 겨울 간식 1순위는 붕어빵이다. 타우린이 다량 들어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붕어빵 사 왔다"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니 벌떡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과 몸동작은 영락없는 봄날의 고양이다. 어떻든 부스스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와 덜떨어진 눈으로 붕어빵을 웃는 입에 가져가는데 이미 혓바닥이 입을 충분히 다시고 난 후이다. 생선요리는 구이를 유난히 좋아하는데, 붕어빵도 생선구이류에 넌지시 포함한다면 일관성이 있는 식성이기도 하며 그것이 고양이답다는 생각도 한다.
겨울철에 후후 불며 뜨겁게 먹어야 맛 나는 어죽. 그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다가 그 여인이 더불어 좋아하는 라면에 넣어서 붕어빵 어죽을 끓여준 적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거짓말같이 맛있게 먹었다는 일화는 나의 거짓말이다. 어죽이 얼마나 뜨거운데. 그 엽기적인 음식물을 맛있게 먹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음식물쓰레기만 장만하는 욕 먹을 짓을 내가 할 리가 없지. 내 아무리 장난기를 주체 못 하는 성격이라 하더라도 그런 무모한 실험이나 아이디어를 자제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아직 부족하지만 느지막이 제법 철들었다.
아무튼지 대한민국의 겨울철 대표 길거리 음식 중 하나인 붕어빵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음식으로 타이(도미) 야키(구운 음식)가 우리네 음식으로 현지화된 것이다. 일본은 붉은색을 좋아하는 민족이어서 생선도 붉은 생선을 많이 즐긴다고 한다. 고가의 고급음식에 속하는 도미의 형태를 본떠 구워낸 빵인 타이야키에서 돔을 붕어로 치환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겨울철 대표 간식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한국의 민물 어류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붕어로 대신한 것이다. 도미빵? 붕어빵? 하면 한국 사람 백이면 백 붕어빵! 일 듯.
겨울철 대표 서민 간식인 데다 '고양이 혓바닥 여인'의 혀와 영혼을 사로잡은 붕어빵은 겉이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데다 고소 달콤한 팥소가 적절히 잘 어울리면 된다. 공정이 번거롭고 난이도 높은 음식은 아니지만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들쭉날쭉하기도 한다. 누구는 말하길 "붕어빵은 맛없게 만들기가 더 어렵다."라고 하는데 맛없는 경우도 많다. 나의 경우는 겉이 바싹하지 않을 때가 주로 그렇다. 갓구워 냈는데 바삭한 기운이 없거나 약하거나, 그 바삭함이 삽시간에 흐물흐물해지는 경우가 있고, 종이봉투에 일정 시간 머물러 있어도 그 바싹함이 유지되는 신기한 경우를 경험한 바에 비추어 볼 때 만드는 사람의 손 기운, 열기 조절, 밀가루 반죽 제작 등에서 차등을 발생시키는 비결이 있기는 한 듯하다.
어쨌거나 우리 '고양이 혓바닥 여인'이라는 별명의 출발이 된 '뜨거운 음식' 중 하나인 붕어빵을 먹는 그 여인의 행태는 이러하다. 붕어빵이 열기가 없어지면 바싹함도 사라지니 따끈할 때 먹어야 한다. 뜨거운 음식을 즐기는 습성을 가진 나는 머리부터 먹어줄까 꼬리부터 먹어줄까 하는 망설임이나 고민 따위 없이 최고로 바삭한 부분부터 덥석 물어 재낀다. 그런 내가 두 개쯤 먹어 치울 때도 '고양이 혓바닥의 여인'은 얼굴을 잔뜩 붕어빵 쪽으로 모으고서는 이 손가락 저 손가락으로 잡았다 놓았다, 이 손으로 툭 저 손으로 툭툭해가며 붕어빵을 식히는데 가끔 핸드폰을 보며 딴청을 피우기도 그 하는 꼴이 꼭 고양이가 먹잇감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 꼴임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초가을 댐 주변 공원 나들이 때 발견한 노점 팔당잉어빵 가게에서 잉어 말고 붕어를 사서 나눠 먹으며 맞은 편의 여인네로부터 먹이를 앞에 둔 고양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큭! 하다가 입천장을 오지게 데일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