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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Jun 08. 2023

부부싸움- 쥐 잡을 일없는 고양이의 밥 값

부부 싸움 - 쥐 잡을 일 없는 고양이의 기묘한 밥값     

누군가는 그들 내외간의 싸움은 개싸움이라고 두털거리드만 우리야 그 정도의 끝장 드라마까지는 아니어도 토닥거리며 언쟁을 벌일 때가 종종 있다. 평생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많다 하는데 그런 부부들 참 존경스럽다. 비결이 뭘까 궁금해질 때마다 관세음보살가운데 토막을 떠올릴 뿐인 나는 그런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초라한 내가 안쓰러워지고. 아내에게 미안해지고 하다가 이내 그래도 개싸움 수준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내 인품은 하품이다. 개싸움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니.  

   

서로의 주장이 부딪히며 해결점을 찾지 못할 때 종종 다툼이 벌어진다. 집과 가족살이에 대해 마련한 계획을 수정하거나 자신의 계획에 없던 일을 내가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 성격이다. 설득을 위해 노력해 보아도 제 나름의 논리가 빈틈이 없다. 빠져나갈 곳이 없으면 ‘일단은~’으로 회피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김 빼기 작전이다. 김이 빠진 것들은 다루기가 쉽다. 며칠 지나고 나면 김 빠진 내가 불쌍해진다. 숙고를 거쳐 내 의견을 수용하는 경우를 경험해 본 것이 기억에 없다. 어떤 경우는 나의 계획을 수용하는 듯하면서 이것저것 조언 같은 간섭을 하는데 일의 끝 무렵에 이르러서야 내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내의 취향이나 방식으로 종료된 일을 마주하게 된다. 이럴 땐 김이 빠진 수준을 넘어 혼이 나가고 얼이 빠져버린 것 같아 내가 가여워진다. 아내에 비하면 나는 한참 하수다.    

 

아내는 언쟁에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감정적인 동요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툼이 본격화되면 아내가 연출하는 모습이 종종 나를 약 오르게 한다. 어떨 때는 내가 무슨 나무토막이랑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흥분으로 부르르 떨기까지 한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쿠쿠 거리며 방정맞게 머라 중얼거리기를 잘하는 전기밥솥에 비하면 아무 말 없이 맛난 김치를 품고 있는 믿음직하고 과묵한 김치냉장고에라도 하소연하고 싶어 진다. 의도하지 않은 듯하며 상대를 약 올리는 기술을 어디서 배워먹은 것도 아니고, 타고난 것이 분명한데 그게 더 사람을 바짝 약 오르게 하는 바람에 버럭버럭 큰소리를 내어 버리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다. 나에 비하면 아내는 고수다.      


젊을 때는 그 철벽 같은 답답함에 밖으로 뛰쳐나가 한두 시간 배회하곤 했다. 그러고 나면 대체로 진정이 되곤 했는데, 요즘은 버럭버럭 큰소리를 참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꼰대가 되어가는가? 나에게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때가 많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다툼 사이에 고양이 뽀루 녀석이 참견을 하며 끼어들기 시작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심각하게 뭔가를 이야기하다가 조금씩 내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때이다. 어찌어찌 이어가다 이윽고 나는 벌떡 일어선 자세가 되고 아내는 외면하는 듯 부동의 자세로 책을 보든가, 과자를 만지작거리며 먹는 둥 마는 둘 한다든지, 제가 좋아하는 밤이나 고구마 따위를 까먹든지 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더 약 올라 급기야 아내를 향해 큰소리를 고래고래 내지르게 된다.   

두어 번의 고함질이 대북확성기의 전투모드로 진화할 즈음에 고양이 뽀루 녀석이 식탁 위로 뛰어올라 난데없는 큰소리로 마구 야옹! 야오옹! 한다. 우릴 번갈아 보다 내 쪽을 보고 제 목청 터지라 야옹 댄다. 나더러 그만 싸우라고 나무라는 듯한 그 모습이 제법 처절하고 절실해서 마주 보던 우리 부부는 고양이처럼 동그래진 눈을 끔벅거리다 그냥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두어 번 더 그런 일이 있었는데 고양이 뽀루 무서워서 이젠 부부싸움도 못 하겠다. 나는 고양이 뽀루 보다도 못한 하품 인생이다.   

   

그러고 보니 근래 둘 사이의 다툼이 없어진 듯하다. 어이! 거기 즘잖은 척하는 여인네! 오랜만에 함 붙어볼 텐가? 할 말이 제법 쌓였는데 말이지!      

놀자는 거신지, 싸우자는 거신지, 싸우면서 놀자는 거신지, 고수인지, 하수인지, 하품 인생인지, 아무튼지 즐거운 인생인지, 봄날은 정녕 그렇게 사기꾼 공갈빵처럼 허망하게 가고 말 거신지 말이지. 우리 세월은 왜 빨라 졌는지 그리고 고양이 사료는 넉넉한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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