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후회, 어떤 바램
어느 날 피아노의 견고하고 깨끗하고 가지런한 건반을 한참 보고 있자니 내 성글고 못난 치아가 부끄러워졌다. 피아노 건반이 그랬다. “치아가 못난 것이야 무슨 허물인가? 치아가 못났으면 소리라도 예쁘게 낼 줄 알아야지” 했다. 이어서 “네 입으로 지은 아름다움이 그 몇?” 하고 나에게 물었다. 화가 나거나 흥분하게 되면 빠른 속도로 모진 말들이 쏟아 내는데 그 말을 듣고 있을 사람의 심정에 대해서는 한치의 상상도 배려도 없었다. 한때는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했을까? 가끔 전투력이 좋기도 했으니까. 이젠 부끄럽다. 노래를 배워야 할까? 누가 들어도 근사한 노래 한 곡 부를 줄 알게 되었으면.
나이들 수록 치아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치아들이 더 성글어지고 못나지며 부끄러움도 더해갔다. 치과를 들락거리며 지난날의 험악한 입 놀림에 대가를 치르듯 불편하고 힘든 시간을 오랫동안 견뎌야 했다. 예약날짜와 시간에 어김없이 치과를 방문하곤 "아! "하면 착하게 "아!" 했고, "됐습니다! "하면 다소곳이 입 닥치기를 반복해야 했다. 치과에 가면 사람들은 참 착해진다. 지난 봄과 여름 범생이 학교가듯 치과를 다녔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던 날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졌다. 한 곡이라도 근사한 연주를 해낼 수 있다면 그나마 봐줄 만한 인생? 치아가 정갈한 웃음을 드러내며 단 한 번만이라도 근사한 연주를 할 줄 알게 되었으면.
내 인생 한순간이라도 진정한 자유를 느낀 적이 있었나 싶었던 날 ‘개 끌리듯 끌려온 인생’이라고 수첩에 써놓았던 적이 있었다. 진정한 자유를 갈구할만한 내적 외침이 있는 인생이었나? 떠나야 할 필연의 동기나 목적도 없었던 인생에 무엇을 위한 그리움과 떠남과 자유였을까?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다.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짓고 소소하지만 많은 행복들이 그로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여전히 ‘끌려온 인생’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 인생 위로할 수 있게 현악기 하나 배워보았으면. 보헤미안의 바이올린이 어울리려나, 인간의 음역과 닮았다는 첼로로 해야 할까. 열심히 연습하고 제법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 낼 수 있을 즈음 어느 날 개 끌리듯 끌려 온 것 같은 인생 ’팅~!‘ 하고 줄 끊어지는 소리에 잠시라도 나 홀연하고 온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