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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Aug 15. 2023

즐거운 인생

부평초, 우주탐사선 설계자, 혼종괴물인데 인생은 즐겁다


1. 부평초

나는  방랑자다. 목적지가 없다. 이리갔다, 저리갔다, 오락가락하다가 끝내 되돌아가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 되돌아 가던 길을 다시  돌리는 것도 아무런 망설임이나 어려움이 없다. 이런 나늘 지켜보던 누군가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목적지가 없다는 것은 목적지가 여러  곳일 수 있다고 훈수를 두었는데, 듣던 중에 "아닌데?' "그런가?" 했다가 산발한 귀신과 한 번도 목격한 바 없는 씨나락?인지  신나락? 인지가 연상되었다. 대체로 유아기적 심리가 반영된 욕심쟁이라는 충고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어서 목적지의 경중이나 거리에  따라 순차를 정하지 못하겠거든 손오공의 분신술을 익혀야 할 것이라고 그랬다. 그러지 않으면 "네 인생의 끝에 남는 것이라고는 한  줌 모래도 과분하다!" 라고 예언인지 저주인지를 덤으로 남겨 주었다. 그래서 나는 서유기를 펼쳐들고 손오공의 분신술을 익히기로  했다. "우랑바리다라나 무따라까 쁘라냐 바로웅! 손오오오오공!" (국민학교 때 외운 손오공 주문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니.) 을  거처 허명만 버전의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를 오가며  그 신나는 분신술을 연습하다가는 어느새인지 나관중의 삼국지  적벽대전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잠시후면 아마 나도 모르는 새 장자의 제물론 편을 펼치게될지도 모르겠다.


2. 우주탐사선을 능히 설계하리라

나는  설계자다. 목적지를 설정하면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들 중 최적, 그러니까 비용, 시간,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최대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루트를 설계해낸다. 또한 설계된 루트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좌고우면하는 우매한 짓을 절대 하지않는다.  이를테면 길가 풀밭에서 제비꽃을 우연히 발견하다든지, 몽글몽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유난히 파란하늘이 눈에 들어온다든지 하는  자극에 결코 미혹되지 않는 의지의 화신이다. 게다가 자신의 루트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과도하게  치밀해서 간혹 일을 그르칠뻔한 적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그 언젠가 나의 뇌를 시스템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나의 끝임없는  피드백시스템과 시뮬레이션 내에서는 오차나 실수나 누락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근래 나이를 먹으면서 사소한 버그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미미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라 안정화된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끔  거울을 보면 창백한 가운을 걸치고 있는 비현실적인 회색 배경의 까칠한 듯 꺼벙한 인물이 비춰지고는 하는데 흔하고 가벼운  스트레스에 불과하다. 이럴때는 비타민을 종류별로 순차와 시간을 준수하며 섭취해 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이  사는 사람이 옆에서 자주 화를내며 읇어 대는데. "이오십보소백보!" 가 주 레파토리이다. 무슨 시스템 파괴를 음모하는 바이러스도  아니고 성가시기 짝이없다. 그가 가진 프로세스는 로직이 너무 빈약한데다 연산 오류가 있는, 말하자면 성능과 질이 떨어지는, 그래서 바이러스 축에도 못 든다 .  어떻게 오십보랑 백보가 동일하단 말인가?  끝내는 그에게 품었던 인간적인 연민도 거두어  버릴 작정이다. 내일은 김치냉장고를 구입할 계획인데 최고의 가성비를 위해 일개월 보름동안에 걸쳐 국내의 모든 김치냉장고를 비교  분석하고 극가성비를 계산해내는데 성공했다.


3.혼종괴물

나는  간딘스키이며 몬드리앙이고 나는 골드문트이자 나르치스이며, 나는 혁명주이자이자 보수주의자 이며, 나는 또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를  한몸에 체화한 전위예술가이다. 나는 냉엄한 아폴론이며 술취한 디오니소스이다. 가끔 이종교배된 정체불명의 '피카소적 괴물'을  거울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종래에는 암수를 한 몸에 구현한 자웅동체를 이룰 법한 징후가 느껴진다. (의사가 그랬다. 여성홀몬이  과다해지는 시기라고)  나는 남잔데 여자다.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 '마징가 Z'의 자웅동체 '아수라백작'이 생각났다. 뒤이어 어릴적  광분했던  라디오드라마 '태권동자 마루치'에 등장했던 괴물 '팔라팔라사령관'이 생각났다. 내가 괴물이라니. 신난다. 날마다 판타지를 오픈할테다.  즐거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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