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失鳶
곧 저녁의 어둠이 시작되려나 하는 시간이었다. 소년은 혼자힘으로 방패연을 완성했다. 처음 만들어본 방패 연이었다. 뿌듯한 가슴이 앞으로 한 뼘은 불룩해진 듯했다. 동행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소년은 혼자서 마을 뒷산의 평평한 정상에 올라 몇 번의 시도 끝에 연을 날려 올리는 데 성공했다. 연은 너무도 근사하게 잘 날아올랐다. 그 작은 가슴과 몸뚱이가 감동으로 충만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힘차게 날아오른 연으로부터 소년의 손끝으로 전해오는 실의 탄탄한 긴장감은 연과 소년과 바람을 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시공으로 연결하는 통로였다.
얼레가 없었던 소년은 신문지를 둘둘 말아 얼레를 대신해 실을 감았고, 첫 실마리를 매듭 없이 그냥 돌려 감았던 탓에 정신없이 풀어대던 연실이 어느 틈엔가 손끝에서 스르륵 빠져나가 버렸다. 심장은 발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듯했고, 숨은 곳 멎을 듯했는데, 매듭 없이 감아버린 얼레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었다는 것이 더욱 소년의 작은 가슴을 절망과 원망으로 아득해지게 했을까.
연은 순식간에 바람에 날려 솟구치다 낮아지며 서서히 멀어져 갔다. 소년은 사력을 다해 연실을 잡으려 언덕길을 달렸다. 풀 등걸에 걸려 넘어지고 구르기를 수차례 그렇게 연은 멀리멀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로 끝내 한 점 무채색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눈물과 흙이 범벅된 얼굴로 힘없이 내려오던 소년의 뒤편으로 제비산은 어둑하고 푸른빛으로 변해있었고, 다섯 살 소년의 푸른 가슴엔 지워지지 않을 자책과 상실감이 자리하게 되었다. 손끝에서 연실이 스윽하고 떠나버리던, 그 섬뜩하게 안타까운 순간은 아직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손끝에도 마음에도.
유난히 추웠던 겨울밤 꽃무늬 싸구려 비닐장판은 맹렬한 연탄불 열기에 한층 더 누렇게 녹아들었다. 식구들이 모여자는 아랫목을 피해 방 한구석에 차갑게 웅크리고 잠든 다섯 살 소년의 꿈속은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 갈기갈기 찢기 운 채 겨울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그의 그 첫 번째 연 아래였다.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손짓하며, 울먹이며, 떨어지지 않는 작고 시린 발을 동동거리느라 온밤 내 춥고 또 춥고 스산했다.
한참을 나이 먹은 지금도 그런 꿈을 꾸는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