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칸을 채우는 유일한 방법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 달려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내 손에도 무언가 쥐어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손에 닿은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취향이었고, 그 끝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았습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아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모른 채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나라는 세계의 지도를 그리려면, 우선 내가 서 있는 좌표부터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나에게 끊임없는 인풋을 넣으려 합니다. 거창한 공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낯선 작가의 문장을 읽고, 평소라면 지나쳤을 풍경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새로운 정보와 감각을 내 안에 들이붓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내가 무엇을 거부하고 무엇에 반응하는지 선명하게 알려줍니다.
인풋은 나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발견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쏟아지는 자극들 속에서 유독 내 마음이 머무는 조각들을 골라내는 일. 그 조각들이 모여 비로소 '나'라는 문장의 주어가 완성됩니다.
아직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끊임없이 채워 넣고, 그 안에서 나를 걸러내는 과정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이 지루한 탐색이 나를 세우는 가장 빠른 길이라 믿습니다. 이 방향이 어디로 이어질지 확신은 없지만, 당분간은 묵묵히 채워 넣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