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의 비장한 '엔비디아 몰빵' 이후 첫 토요일이 왔다. 역삼역 2번 출구 앞 스타벅스에 모인 세 남자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과 해탈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민준은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증권 앱을 켰다. 화면에는 마이너스 10%라는 숫자가 선명한 파란색으로 떠 있었다.
"야, 다들 살아있냐?" 민준이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았다.
"살아는 있는데, 내 300만 원은 이미 죽어가는 중이다." 재혁이 자신의 파란색 화면을 겹쳐 놓으며 대답했다.
"공장에서 폐유 드럼통 나르면서 '난 이제 엔비디아 주주다'라고 주문을 외웠는데, 주가는 내 작업복만큼이나 시커멓게 타들어 가네."
지훈은 텀블러에 붙은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하라'는 버핏의 명언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친구들아, 원래 위대한 투자는 고통을 동반하는 거야. 나도 비상금 200만 원 넣자마자 마이너스 찍었지만, 우린 지금 주식을 산 게 아니라 '달러 자산'을 산 거라고 생각하자."
지훈은 분위기를 전환하려 노트북을 펴고 오늘의 '공부'를 시작했다. 주제는 인플레이션과 화폐가치였다.
"잘 들어봐. 우리가 지난주에 먹은 삼겹살이 1인분에 18,000원이었지? 근데 이거 2년 전엔 15,000원이었어. 고기 양은 똑같은데 돈은 더 내야 해. 그게 무슨 뜻이겠어? 내 주머니 속 만 원짜리의 힘이 약해졌다는 거야. 이게 바로 인플레이션이고, 화폐가치의 하락이지."
민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 연봉은 8,000만 원 그대로인데 삼겹살값이 20% 오르면, 난 사실상 연봉 삭감을 당한 거네? 팀장님이 내 월급을 깎은 게 아니라, 세상이 내 월급을 갉아먹고 있었어."
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공장도 그래. 원자재 가격은 미친 듯이 오르는데, 아버지는 내 월급을 3년째 동결 중이야. 난 인플레이션 때문에 강제로 가난해지고 있었던 거지."
지훈은 열변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원화만 들고 있으면 위험하다는 거야. 경제 위기가 오면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달러 가치는 올라. 우리가 엔비디아를 산 건 단순히 주가 대박을 노리는 게 아니라, 달러라는 안전자산을 확보해서 내 자산의 가치를 지키는 '보험'을 든 셈이지."
"오, 그럼 환율이 오르면 내 엔비디아 주가가 좀 떨어져도 원화로 환산하면 본전일 수도 있겠네?"
민준의 눈이 반짝였다.
"연애 앱에서 차단당해도 '난 달러 자산을 가진 글로벌 투자자다'라고 생각하면 멘탈 관리가 좀 될 것 같아."
지훈이 기세를 몰아 기축통화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민준이 조용히 지훈의 노트북 화면을 덮었다.
"지훈아, 15분 지났다. 이제 인플레이션 때문에 내 18,000원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빨리 고기 먹으러 가자."
세 남자는 스타벅스를 나와 익숙한 듯 뒷골목 고깃집으로 향했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민준이 소주를 따랐다.
"야, 인플레이션이고 나발이고, 이 소주 한 잔의 행복은 대체 불가능한 가치다. 건배!"
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87년생들의 스터디는 오늘도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다. 그들은 부자가 되는 법을 배우러 모였지만, 서로의 비참한 현실을 안주 삼아 웃는 법을 먼저 익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