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2시, 역삼역 스타벅스 2층 창가 자리. 민준은 지난번 소개팅 상대에게 보낸 '엔비디아 변곡점' 메시지 옆의 숫자 '1'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혁은 오늘도 꿋꿋하게 가죽 재킷을 입고 나타나 "젠슨 황 형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냐"며 폼을 잡았다. 지훈은 익숙하게 '경쟁하지 마라, 독점하라' 스티커가 붙은 텀블러를 꺼내며 오늘의 스터디를 선언했다.
"야, 우리가 지난주에 엔비디아 풀매수 할 때 달러로 바꿨잖아. 근데 왜 우리 돈은 달러랑 가치가 다를까?" 지훈이 화두를 던졌다.
민준이 물었다. "나라 힘 차이 아니야? 우리 회사는 대기업이라 대우받는데, 중소기업 때는 무시당했던 거랑 비슷한 거겠지."
지훈이 답했다. "정답! 환율은 결국 그 나라 경제의 성적표야. 전 세계 사람들이 달러를 원화보다 훨씬 더 믿고 필요로 하니까 달러가 비싼 거지. 이걸 기축통화라고 해."
지훈이 태블릿에 '1944년 브레튼우즈'라고 적으면서 말했다.
"옛날엔 달러가 진짜 '금'이었어. 35달러를 가져오면 금 1온스로 바꿔주겠다고 미국이 약속했거든. 이걸 금태환이라고 해."
재혁: "오, 그럼 진짜 달러가 금이었네?"
지훈: "그랬지. 근데 미국이 전쟁하느라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니까, 다른 나라들이 '야, 너네 금 진짜 있는 거 맞아? 금으로 바꿔줘!'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어. 그때 1971년에 닉슨 대통령이 '이제 금으로 안 바꿔줘!'라고 배를 쨌지. 이게 그 유명한 닉슨 쇼크야."
민준: "완전 사기꾼 아니야? 내 연애 앱 상대가 사진이랑 실물 다르다고 차단한 거랑 뭐가 달라!"
재혁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럼 가까운 일본 엔화도 기축통화야? 중국 위안화는 덩치도 큰데 왜 아니지?"
지훈이 환율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엔화는 세계적으로 신용이 높아서 기축통화 대접을 받아. 위기가 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찾거든. 하지만 중국 위안화는 덩치는 커도 정부가 환율을 마음대로 조절하고, 돈이 마음대로 나가는 걸 막아놔서 사람들이 아직 못 믿는 거야."
재혁이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우리 아버지 회사 폐유도 믿을 수 있는 업자한테만 파는 거랑 똑같네. 신용이 최고구먼."
"자, 이제 기축통화 공부 끝! 우리도 기축통화인 달러로 주식 샀으니까, 이제 주주답게 고기 먹으러 가자."
지훈이 노트북을 덮자마자 세 남자는 일사불란하게 짐을 쌌다.
공부는 15분이면 충분했다. 역삼역 뒷골목 고깃집에서 삼겹살 5인분을 해치운 그들 앞에는 다시 9만 원이 적힌 계산서가 놓였다.
민준: "야, 인플레이션 때문에 고깃값 올랐으니까 정확히 나눈다. 3만 원씩 입금해."
재혁: "기축통화 주주들이 1,000원 단위에 목숨 거는 게 좀 웃프긴 한데... 보냈다!"
그들은 여전히 부자는 아니었지만, 달러의 역사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87년생 친구로서의 신용을 쌓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