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그릇을 다듬으며 드로잉 하는 시간

by 모아키키 정세복


저는 요즘 도자기 공방에서 일손을 도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제 개인 작업실은 아니지만, 매일 흙냄새를 맡으며 다른 분들이 만든 그릇을 만지고 다듬는 것이 저의 주된 일과입니다.



도자기 공방의 하루는 생각보다 고단합니다.

많은 분이 와서 즐겁게 체험을 하고 가면, 그 뒤에는 산더미 같은 일거리가 남습니다.

원데이 클래스 수강생분들이 정성껏 만들고 간 그릇들은 아직 미완성 상태라, 누군가는 그것들이 가마 속에서 깨지지 않게 일일이 손을 봐줘야 합니다.



그릇 바닥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고, 거친 부분을 부드럽게 문지르는 '뒷정리'가 사실 제 업무의 대부분입니다.

출강 수업이라도 있는 날에는 수십, 수백 개의 그릇을 다듬느라 어깨가 뻐근해지기도 합니다.

타인의 그릇을 다듬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된 시간 속에서도 기분 좋은 설렘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뒷정리가 끝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 혹은 수업과 수업 사이의 짧은 틈입니다.




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붓을 듭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그릇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 도자기 하나를 꺼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제가 아끼는 드로잉을 하나씩 그려 나갑니다.


거창한 예술을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고단한 하루 끝에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마음으로 선을 긋습니다.


흙먼지가 가득한 작업대 위에서 제 드로잉이 조금씩 채워질 때, 비로소 오늘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듭니다.


다른 분들의 그릇을 다듬어주는 일이 처음에는 그저 힘들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의 서툰 솜씨를 만지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그릇은 없지만,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그릇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타인의 그릇을 예쁘게 완성해 주면서 느끼는 보람과, 그 사이사이에 제 그림을 그려 넣는 기쁨.

이 두 가지가 섞여 지금의 제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록 제 작업실에서 마음껏 그리는 환경은 아닐지라도, 일손을 돕는 이 틈새 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창작의 토양이 됩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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