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의 빈자리를 채우며 태어난 행운들

by 모아키키 정세복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마 문이 열리는 날입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가마를 여는 순간은 늘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1,250도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흙이 어떻게 변했을지, 공들여 그린 그림들이 선명하게 살아남았을지 확인하는 첫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가마 맨 위의 드로잉 접시들은 직접 그린 건 아니고 색소지라는 색점토 검은색을 빚어 백자토에 드로잉 선대로 찍은 작업물입니다.



​사실 저는 제 개인 작업을 가마에 가득 채워 구운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공방에서 일손을 돕다 보면,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수업을 듣고 가신 분들의 소중한 그릇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도자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일 수도 있는 그 마음들을 가장 좋은 자리에 먼저 배치합니다.



​제 드로잉 접시들은 늘 그 뒤에 마지막에 줄을 서 있습니다.

가마 안에 손님들의 그릇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채워 넣고 나서, 아주 조금 남는 빈자리들이 생깁니다.

저는 그 작은 틈새에 제 드로잉 접시들을 살짝 끼워 넣습니다.

제 작업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타인의 그릇이 안전하게 구워지는 것이 먼저라는 저만의 원칙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좁은 틈새에서 구워져 나온 접시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틈틈이 그려 넣었던 선들이 가마의 뜨거운 열기를 이겨내고 선명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면, 고단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잊히곤 합니다.



​이번에 나온 드로잉 접시들도 그렇게 귀하게 얻은 결과물들입니다.

가마의 구석진 자리였지만, 누구보다 단단하고 매끄럽게 잘 구워졌습니다.

화려한 자리는 아니었어도 묵묵히 제 차례를 기다려준 대견한 녀석들입니다.


​가마에서 나왔다고 해서 바로 완성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다듬기'의 시간입니다.

도자기 바닥면이 식탁을 긁지 않도록, 그리고 손으로 잡았을 때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도록 사포로 정성껏 문지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닥까지 매끄럽게 만드는 이 과정이야말로, 제가 제 작품을 사용하는 분들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