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11 Bilbao
빌바오로 향하는 날. 아침부터 분주한 주인아저씨는 왠지 모르게 모든 동작이 절도 있었다. 외딴 마을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고 식사를 차리는 그 일상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누구든 어디든 스스로의 일상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나의 일상에 그런 마음들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안개가 자욱한 창밖 풍경 앞에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의 길은 평소보다 완만하고 쭉 뻗은 산길이 많았다. 적당한 도로와 편해진 몸으로 주변 풍경을 조금 더 둘러볼 수 있었고, 도시가 가까워지자 보이는 정류장들이 예뻤다.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공휴일이었던지라 모든 슈퍼들이 문을 닫았지만, 이 베이커리만큼은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이 나라에서 베이커리란 무슨 의미일까. 사람들에게 그만큼 일상의 필수인 존재일까. 한국에서 이런 것은 뭐가 있을까. 추석에도 공휴일에도 예외 없이 문을 여는 것.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길을 다시 걸었다.
스페인에는 생각보다 대형견이 많지 않은 편이다. 호주에서는 커다란 개들을 흔히, 혹은 주로 볼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한 손에 안을 수 있는 작은 개들이 많다. 특히 저 까만색 치와와인지 닥스훈트인지 애매한 친구들이 참 인기종인 것 같다. 매번 야무져 보이는 그 얇은 다리가 참 귀엽다.
저녁으로는 컵라면, 하몽, 바게트, 치즈 그리고… 멜론을 먹었다. 다른 나라, 다른 대륙에 와서 가장 색다르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과일인 것 같다. 호주의 것들과는 또 정말 다른 달달한 멜론에 짭짤한 하몽을 얹어 먹었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 멜론까지 마무리하니 아주 버거운 배가 되었다. 요즘에는 종종 이렇게 버거울 정도로 밥을 많이 먹을 때가 있다. 평소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감각이긴 하지만, 순례길을 걷는다는 핑계로 먹는 것에 대한 조절을 하지 않게 되어서 인 것 같다.
빌바오에 도착했다. 구겐하임의 도시로 유명한 이곳은 역시나 도시 다움이 느껴지는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도시들보다 더 현대적이고, 마치 시드니를 연상케 하는 곳들도 참 많았다. 밤에 본 구겐하임은 그 복잡한 외관이 참 화려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음에 놀랐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떠올리게 했다.
구겐하임보다 내 마음을 더 이끌었던 것은 건물 앞에 있는 바의 야외 공연이었다. 색소폰 연주가 참 멋진 재즈 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음악이 너무 멋져서 음원을 틀어놓은 줄 알고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샹그리아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걷는 내내 먹고 싶었던 샹그리아가 크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음악은 낭만적이었고, 세바스찬의 Seb's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그들이 고민했던 것처럼 나의 꿈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멍하니 떠올리게 만들더라. 내내 가득찬 그 생각들이 나를 이리저리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