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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Oct 13. 2024

차선보다 자전거 도로가 더 넓은 나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보낸 두번째 날

아침 10시, 시내 워킹투어에 가기 위해 부지런히 아침을 먹었다. 호스텔의 주방은 사람들로 붐볐고, 가족 여행객들도 종종 눈에 보였다. 햇살이 큰 창으로 들어온 그 아침은 코펜하겐이 비의 도시라는 것을 잊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딱 맞추어 도착한 모임 장소에서 오늘의 투어를 이끌어주실 가이드님을 만났다.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평생 동안 20여 개국에서 살았고, 덴마크 아내를 만나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문장마다 유머를 곁들이는 그의 영어는 종종 이해하지 못한 문장들 속에서도 흥미를 잃지 않게 해 주었다.  

올해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무료 투어를 찾았고, 프랑스 니스 그리고 이곳 코펜하겐에서도 구글링을 통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었다. 영어로 진행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로컬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워킹투어는 현지의 느낌을 더 풍족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게다가 투어가 끝난 이후 10유로 남짓의 팁을 가이드에게 전하는 것 이외에는 정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도 8개월째 해외에 머물고 있는 내게 아주 큰 메리트였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참여했던 한국인 투어와 설명의 퀄리티가 비슷한 편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코펜하겐에는 자전거가 참 많다.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들은 물론이고, 커다란 짐이나 강아지까지 태울 수 있는 수레도 자주 눈에 뜨인다. 이렇게 비도 많이 오고 날씨도 추운 도시에서 어떻게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 될 수 있었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가이드는 ’ 자전거의 도시‘라는 설명에 덧붙여 이곳이 얼마나 안전한 도시인지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꼽혔다며, 자전거에 가방을 걸어두고 일주일 넘게 방치해도 그 가방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온 뒤로 내내 치안과 도난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이드의 이런 설명을 듣고 감탄하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을 함께 마주하는 것이 참 신선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도 둘째라면 서운한 치안 좋은 국가인데 교육과 문화적인 부분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어느 정도 CCTV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이 명백하니 말이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유럽 문화에서 주변국들과 다른 분위기를 만드는 유별난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가이드는 내게 교육과 복지가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덴마크에는 실업자가 없고, 작은 가게에서 일하더라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어느 정도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사회 시스템이 그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는 맥락이었다.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경계와 서로에 대한 눈치,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감시의 눈으로 만든 안전한 한국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기에 흥미로웠다.

골목들을 지나 덴마크 왕궁에 다다랐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왕실의 주인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이라고 했다. 특별히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았고, 문 앞을 지키는 몇몇 가드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오픈되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강은 참 맑았다. 가이드는 우리는 강변으로 바짝 안내하더니, 강바닥을 보게 했다. 물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저 조각물들은 알고 보니 인어공주를 기다리는 가족들이었다. 코펜하겐에서 나고 자란 그의 아내마저도 이 사실을 몰랐다며 유쾌하게 웃는 가이드 덕에 또 하나의 작고 특별한 구경을 했다.

투어 틈틈이 가이드는 우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는데, 나는 이때다 싶어 어제부터 계속 궁금하던 것들을 쏟아냈다. 10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두꺼운 패딩이 부담스럽지 않은 날씨에 골목마다 늘어선 야외 테라스가 내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어떻게 이 날씨에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을 수 있냐고 물었고, 가이드는 그저 사람들이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심지어 기온이 0도 가까이 떨어질 때에도 테라스가 붐빈다고 말이다. 참 신기하고 다른 문화이다. 온열 방석을 깔아서라도 밖에 앉겠다는 그 마음…! 날 좋은 가을에도 테라스 좌석을 찾기 힘든 한국과 참 다른 점이다.

도시의 끝에서 투어가 종료되었다. 함께 걸었던 스페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가이드에게 감사의 팁을 전한 뒤, 간단히 점심을 먹을 벤치를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시원하게 물을 뿜는 분수 앞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챙겨 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물가 비싼 덴마크에서 그나마 마트물가는 한국과 비슷했고, 든든한 저녁과 아침, 간식 등을 모두 사도 만원 정도 안에서 해결 하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들린 카페에서 카푸치노가 만원 정도였다는 점도 내겐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뉘하운 운하에 들렀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알록달록한 그 겉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눈을 사로잡았기에 별다른 특별함이 없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 투어에서 들은 내용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홍등가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과거의 시설들은 모두 자리를 옮기고, 이렇게 예쁜 색감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거리가 되었다니 새삼 신기했다.

조금 더 걷다가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도시 반대편에 있는 코펜하겐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내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기에, 코펜하겐의 따릉이인 'Donkey'앱을 이용하여 자전거를 빌렸다. 차선보다 넓은 자전거도로를 달렸다. 모든 교차로에 자전거 도로가 끊기지 않고 이어져있었다. 왠지 모르게 빠르게 달리는 덴마크 사람들 속에서 나도 조금은 속도를 내보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감정이었다. 역시 자전거는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도서관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건물과 신식 건물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었고, 각각의 매력이 돋보이는 공간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사람들은 따로 또 같이 자신들의 무언가에 집중해 있었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이런 곳에 방문하니, 나도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조금은 더 기다리게 된 것 같았다.

저녁장을 보기 위해 근처 마트로 향하다가 옆 골목에 있는 작은 아시안 마트를 발견했다. 마트 입구에 가장 크게 진열되어 있는 익숙한 물건이 눈을 사로잡았다. 작년이었을까, 덴마크 정부에서 불닭볶음면 제품 중 일부의 유통을 금지하는 소동이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덴마크 사람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괜스레 더 웃음이 지어졌다.

아시안 마트를 마주친 김에 작은 태국라면을 사들고 나왔다. 기대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고, 오랜만에 챙겨 먹은 고기도 적절하게 구워져 먹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적당히 나 스스로를 잘 챙겨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이 하루가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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