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큘럼도 시간표도 모르고 무작정 떠난 곳
덴마크 인생 학교(folk high school)로 향하는 날이 다가왔다 숙소에서 아침을 간단히 차려 먹은 뒤 보증금을 내고 샀던 페트병을 잘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가까운 마트에 들러 구석에 있는 페트병 보증금반환기에 병을 넣고 보증금을 받았다. 보증금은 마트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 형식이었고 점심으로 먹을 바나나와 음료 하나를 집어 들어 바우처와 함께 계산했다. 생각보다 쉬운 절차 덕분에 바나나를 무료로 먹은 기분이 들어 뿌듯한 아침이었다.
아침에는 비가 왔다. 비 도시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내가 잠시 머무는 동안 내내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게 참 감사했다. 이렇게 또 안 되는 게 없다.
나의 목적지는 코펜하겐 허브 역에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다시 20분 정도 버스를 타면 나오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순례길에서 만난 코펜하겐 사람도 이 동네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었다. 과연 어떤 동네일지 정말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무덤덤하기도 두근두근하기도, 참 복잡하고 얼떨떨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붐비던 구간을 조금 지나니 창밖은 온통 넓게 펼쳐진 평원으로 가득했다. 슈퍼에서 산 귤 한 봉지를 펼쳐 오랜만에 있는 책과 함께 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그 넓은 풍경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것 같으면서도. 역시나 내게는 참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이제 막 점심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방에 잠시 짐만 가져다 두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이곳의 삼시세끼는 모두 채식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야채 볶음과 약간의 스파게티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레까지 정말 낯선 음식이었지만 모두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주일 동안 삼시세끼 먹게 될 이 음식이 나에게는 또 특별한 기억이 될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슈퍼에서도 유독 통밀빵을 많이 본 것 같다. 마트 빵 코너에는 70% 이상이 통밀빵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먹게 된 빵도 씹는 맛이 일품인 통밀 빵이다.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은 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저녁을 먹었다. 일주일 간의 커리큘럼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던 터라 담당자를 찾아 나섰더니 마침 방금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라. 정말 이렇게 아무 정보도 없이 여기까지 온 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걱정되는 마음은 밀어두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물은 결과 영어로 이루어지는 명상 단기 클래스는 수강자가 나밖에 없어서 아마 장기 클래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될 거라고 했다. 내일 아침 선생님이 오신다니 그를 기다려 보는 수밖에.
그렇게 덴마크 인생 학교에서 첫날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