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하면서 포근한 도시, 코펜하겐
오래도록 꿈에 그리던 그곳에 드디어 왔다. 먼 길을 돌아온 덕에 며칠 전까지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코펜하겐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부터는 정말 그 먼 곳에 내가 왔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즈음이었을까,
다른 과목보다 조금 떨어지는 국어 성적에 학원을 추가로 다녀보지 않겠냐고 조언했던 나의 학교 담임선생님에 대한 못마땅함과 그와 비슷한 종류의 여러 불만, 그리고 지금도 그때도 여전히 높은 한국의 자살률과 청소년 우울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읽었다. 행복지수 1위로 유명한 덴마크의 여러 문화에 대한 책이었고, 사회 전반에 정착되어 있는 제도들과 그 배경이 된 역사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덴마크의 인생학교 '폴케호이스콜레'를 접하게 되었다. 막연한 동경으로 인터넷에 관련 프로그램들을 찾아보았지만 고등학생인 나에게 인생학교의 등록금은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이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과 언어의 장벽으로 나는 점점 그것들을 잊어갔고,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인생학교는 저 먼 기억 속에 묻혀있었다. 그저 해외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호주 어학연수를 떠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호주에서 맞이하는 2번째 주였다. 6주마다 돌아오는 새로운 학기의 시작에 나는 한 일본인 언니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함께 점심을 먹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그녀는 흔쾌히 내게 시간을 내어주었다. 버섯육수에 담긴 낯선 마라탕을 먹으며 우리는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대화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2년 간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호주에서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덴마크 인생학교에 갈 것이라고 말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억 저 속에 묻혀있던 나의 오랜 꿈이 꺼내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다시 꺼내어진 나의 꿈 덕에 나는 다시 설레었다.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한 덴마크 인생학교가 눈앞에 다가와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개월 뒤, 나는 드디어 덴마크에 오게 되었다.
덴마크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자정이 다 되어 도착한 코펜하겐은 블로그 리뷰에서 봤던 것만큼 안전해 보였고, 한적하지 않은 지하철 안은 저마다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평범함으로 꽉 차있었다. 열차의 행선지가 맞는지 두리번거리는 내게 바로 앞에 앉은 승객은 길을 자세히 확인해 주었고, 내리는 역에 다다라 나에게 다시 알려주기도 했다. 평범하고 참 친절한 덴마크의 첫날이었다.
그렇게 안심한 마음으로 숙소에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열차 한량이 통째로 자전거를 위한 공간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의 도시, 코펜하겐에 내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 실감 났다.
다음날 느지막이 잠을 자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서늘한 도시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공기는 참 상쾌했다. 비싼 물가에 겁을 먹어 슈퍼로 직행한 나는 빵을 두 개 사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마침 딱 맑아진 날씨가 도시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패딩 혹은 코트, 사람들은 가을 겨울 계절에 맞는 외투를 입고서도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었다. 유럽인들의 테라스 사랑은 참 신기하다.
HAY House에 왔다.
한국에서 누군가의 에코백 로고로 많이 봤던 것인데, 가구 브랜드인 줄을 몰랐다니. 가구로 유명한 북유럽의 첫날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구경거리였다. 다양한 모양의 의자와 소파들부터 작은 소품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종종 나의 취향을 건드리는 예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고, 언젠가 나의 집을 꾸리게 되면 들여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UN city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덴마크에 있는 UN 사무실을 투어하는 프로그램이었고, 건물 전체가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고 하기에 흥미로웠다.
투어는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잠시라도 다양한 UN 조직들의 업무 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특별했다. 중심 라운지를 둘러싼 여러 줄기는 마치 햇살모양 같은 구조였고, 그 가운데 검은 계단은 각 층의 조직들이 서로 어우러져 화음을 낼 수 있도록 그랜드 피아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했다.
이 건물의 화장실에는 생리대가 비치되어 있었다. 생활필수품인 생리대가 없어 기본적인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저개발국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역시 UN 건물이라서 일까. 화려한 시설이라기보다는 이런 작은 부분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건물 밖을 나와 길을 걷다가 주택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관광객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공간에 사람들의 일상이 보였고, 그 일상 속으로 들어가 비싸고 평범한 라테를 마셨다.
다시 한참을 정처 없이 걷다가, 시간이 더 늦기 전에 덴마크 건축 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 역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공간이었고, 적지는 않은 입장료가 머쓱할 정도로 간단한 전시가 구성되어 있었다. 사물함 옆에 외투를 보관하는 용도로 마련된 공간을 보며 북유럽을 실감했던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위로해 보았다.
집에 오는 길에 아시안 마트에 들렀다. 유럽 치고는 저렴한 1900원짜리 라면을 두 개 사들고, 근처 역에 가서 이틀 뒤 학교가 있는 곳으로 향할 티켓을 구매했다. 맑은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고, 이 먼 곳까지 온 내가 조금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마트에서 산 생수 영수증에 알 수 없는 추가 요금이 붙어있었다. 그 알 수 없는 항목 'PANT'는 검색해 보니 페트병의 보증금이었다. 재활용을 위해 북유럽 몇몇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더라. 생수 한 병 값에 맞먹는 보증금이라니, 무조건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그래, 환경 정책은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또 하나의 문화를 직접 보며 배운다.